미국 정부가 주미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는 고강도 보복 조치를 취했다. 러시아가 해킹을 활용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이 이유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가 1월 20일 취임하기 때문에 긴장 관계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양국이 강 대 강으로 맞서면서 신냉전 사태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북핵 문제 등을 놓고 양국 모두와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조치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강한 러시아 제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력하다. 주미 러시아 대사관과 샌프란시스코 러시아 총영사관 직원 등 35명에게 72시간 안에 가족과 함께 떠나라고 요구했다. 뉴욕과 메릴랜드에 있는 러시아 정부 시설 2곳을 폐쇄하고 러시아군총정보국(GRU)과 러시아연방보안국(FSB) 및 관련 개인에 대해서는 경제제재를 취했다. 미국 정부가 이례적인 강경 대응을 편 것은 대선에서 러시아가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해킹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보기관들은 러시아와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이를 위해 비밀리에 협력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물론 내달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하면 갈등이 금방 끝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오바마의 조치가 행정명령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집권 후 마음만 먹으면 무효화할 수 있으니 그렇게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정보기관이 내린 결론까지 뒤집으면서 러시아를 편드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상반된 전망도 나온다. 양국이 우크라이나ㆍ시리아 사태 등으로 최근 껄끄러웠던 것을 생각하면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섣불리 짐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두 나라의 갈등은 세계의 긴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평화를 위해 앞장서야 할 두 나라가 이렇게 불안과 긴장을 부추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러 양국은 감정을 앞세워 강경하게 맞설 게 아니라 사태를 차분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은 우리에게도 결코 달갑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동맹들도 러시아의 민주주의 개입 행위에 반대해야 한다”고 밝힌 터라 특히 조심스럽다. 그의 요구는 한국 등 동맹국들도 미국과 같은 입장을 보여 달라는 요구로 읽힌다. 그러나 우리는 북핵 문제 등에서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의 협조 또한 중요하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 우리에게 미칠 영향 등을 신중하게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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