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황량한 사막 위. 영국 정보국 장교 맥스(브래드 피트)는 낙하산 하나만 매고 착지한다. 독일 대사를 암살해야 하는 특수 임무를 맡은 그의 마음과 다를 바 없이 메마르고 삭막한 풍경이다. 모래를 휘날리며 차 한 대가 맥스 앞에 선다. 가짜 신분증과 총, 결혼반지를 건네 받은 맥스는 손가락에 반지를 끼면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아니 존재할 수도 없는 시대의 아픔에 반지로라도 위안을 받으려는 듯한 그의 얼굴이 묘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흔들리는 가로등 빛은 맥스의 심정을 대변한다. 그는 카사블랑카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서 프랑스 비밀요원 마리안(마리옹 코티야르)을 만난다. 두 사람은 몇 개월 만에 재회한 부부행세를 하며 모든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인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호기심의 눈빛을 보내던 이들은 운명처럼 결국 사랑에 빠진다.
영국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보금자리를 마련한 두 사람은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맥스를 혼란에 빠뜨린다. 상부로부터 마리안이 독일군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 72시간 내로 그녀의 무고함을 밝히지 못하면 직접 마리안을 처단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인다. 스파이의 행복한 사랑을 보여줄 것 같던 영화는 이중간첩일지 모르는 마리안의 알 듯 모를 듯한 행적이 더해지며 예상 밖 긴장감을 선사한다. 두 사람의 만남이 1부라면, 맥스가 마리안에 대한 의심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연은 2부라 하겠다. 아름답고 지적인 매력으로 맥스를 사로잡은 마리안, 그녀는 과연 이중스파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는 관객을 의문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세기의 연인’ 피트와 '프랑스의 자존심' 코티야르의 만남 만으로 기대를 모았던 '얼라이드'는 영상미까지 더하며 아름다운 장면들을 빚어낸다. 1940년대 고혹적인 분위기를 내던 할리우드 영화들과 견줄 만하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고전영화 '카사블랑카'(1942)를 보는 듯한 은근한 조명과 우아한 색채의 향연이 고전미를 풍긴다.
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롱드레스와 웨이브를 한껏 준 헤어스타일의 코티야르는 고전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외모로 숨을 멎게 한다. 피트는 단정하게 올린 머리와 깔끔한 턱시도, 딱딱한 느낌의 제복으로 당대의 공기를 담으며 향수를 자극한다. 두 사람이 합작해내는 멋들어진 외모가 영화의 8할을 담당한다.
복고풍 비주얼이 주는 몽롱한 환상에 빠져들고 싶은 관객이라면 추천하고픈 영화다. '백 투 더 퓨쳐'와 '하늘 위를 걷는 남자' 등을 통해 빼어난 영상미를 선보여온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그러나 ‘허무개그’처럼 힘을 빼놓는 마지막 반전이 아쉽다.
보너스 하나. 피트와 코티야르의 실제인지 영화인지 모를 아슬아슬한 사랑의 줄타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속에서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관객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에 충분하다. 최근 피트가 앤젤리나 졸리와 이혼 소송을 벌이면서 원인 제공자로 코티야르의 이름이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피트가 '얼라이드'를 촬영하며 코티야르와 스캔들이 나서다. 1월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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