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첩’과 ‘도하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축구 한일전의 추억이 내년 1월 8일 일본 시즈오카에서 재현된다. 일본 시즈오카현 축구협회가 한일 축구 레전드 매치를 추진했고, 한국은 김병지(46) SPOTV 해설위원, 서정원(46) 수원 삼성 감독, 김도훈(46) 울산 현대 감독, 유상철(45) 울산대 감독 등이 주축이 되어 참가하기로 했다.
한·일 축구 레전드가 모여 친선경기를 치르는 건 지난 2008년 대한축구협회 창립 75주년 기념 경기 이후 9년 만이다. 친선경기에 참여하는 유상철(45) 울산대 감독은 29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일 관계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가장 치열했던 당시의 라이벌이 모여 추억을 떠올리고 친목을 다지자는 취지에 공감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한일 양국 선수들 모두 이기고 싶은 마음들이 있겠지만 이제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일전에 대한 추억도 하나의 콘텐츠인만큼 정기적으로 교류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대표팀에서는 김병지, 서정원, 김도훈, 유상철을 비롯해 윤정환(43) 세레소 오사카 감독, 하석주(48) 아주대 감독, 이상윤(47) 건국대 감독, 최진철(46) 전 포항 감독 등이 선수로 뛴다. 단장은 김호곤(65)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감독은 김정남(73) OB축구회 회장이 맡는다. 스기야마 류이치(75)가 감독 겸 단장을 맡는 일본 대표팀에는 ‘한국 킬러’로 이름을 날렸던 조 쇼지(41)와 일본 축구의 전성기를 연 귀화 선수 라모스 루이(59), 오노 신지(37) 등이 나선다.
이들이 뛴 1990년대 한일 축구사엔 굵직한 이슈들이 많았다. 특히 한국 축구팬들에게 1993년 ‘도하의 기적’과 1997년 ‘도쿄 대첩’은 큰 추억이다.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펼쳐진 1994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최종전이 열리는 10월 28일 한국은 북한과, 일본은 이라크와의 일전을 동시에 치르게 됐다. 한국은 북한에 2점차 이상 승리를 거둔 뒤 일본이 이라크에 패하거나 비기길 바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북한을 3-0으로 이긴 한국은 웃을 수 없었다. 경기 종료 시점까지 타구장에선 일본이 이라크에 2-1로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도하의 경기장에 이라크의 오만 자파르가 경기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뜨리며 일본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 꿈을 무너뜨렸다. 공교롭게도 한국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 순간을 일본에선 지금도 ‘도하의 비극’이라고 회상하고 있다.
1997년 9월 28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은 한일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로 꼽힌다. 후반 20분 야마구치 모토히로가 골키퍼 김병지의 키를 넘기는 로빙 슛으로 승기를 잡았다. 일본의 승리가 굳어지는 듯했던 후반 38분 또다시 ‘드라마’가 시작됐다. 최용수의 헤딩 패스를 받은 서정원의 헤딩골로 동점을 만든 한국은 3분 뒤 이민성의 그림 같은 중거리 슛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 경기를 중계한 MBC는 56.9%의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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