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2.28
2007년 12월 28일 네팔 왕정이 폐지됐다. 1768년 통일 왕정국가가 수립된 이래 절대왕정과 영국ㆍ인도의 외세 지배 하의 허수아비 왕정, 입헌왕정, 절대왕정 회귀 등,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시기 구분이 무색할 만큼 정체가 오락가락했던 네팔의 정치가 비로소 공화정 체제로 자리 잡았다. 정치적 혼란과 극심한 빈부격차, 힌두 전통의 사회ㆍ문화적 카스트 등 네팔 민주화의 길은 아직 멀지만, 다수가 2007년 말을 네팔 민주화 원년으로 꼽는 까닭은 적어도 왕실의 전횡으로부터는 자유로워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네팔의 대규모 민주화 운동은 1990년에 일어났다. 72년 왕위에 오른 비렌드라 국왕의 전횡이 극심했다. 그는 어용의회 ‘판차야트’를 앞세워, 입법ㆍ사법ㆍ행정을 좌지우지한 사실상의 절대군주였다. 판차야트는 직접선거로 선출된 112명과 국왕이 임명하는 28명 등 140명 의원으로 구성된 대의기구지만,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회의 감독아래 놓인 명목상의 기구였다. 국왕이 판차야트 의원 가운데서 총리를 비롯한 각료를 임명했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도 국왕이 뽑았다. 군 통수권도 당연히 국왕이 쥐고 있었다. 정치ㆍ언론ㆍ교육 등 반체제 인사에 대한 영장 없는 구금ㆍ재판, 납치ㆍ고문ㆍ암살이 빈번했고 농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국민은 절대빈곤에 허덕였다.
그 끝에 터져 나온 게 1990년 2월 이후 8주간 이어진 민주화 운동이었다. 판차야트 해체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시민 수천 명이 투옥되고 수백 명이 군과 경찰의 총에 희생됐다. 하지만 시민들은 승리했고, 비렌드라는 다당제 의회민주주의 도입과 헌법 개정, 총선 실시 등을 골자로 한 입헌군주제 도입에 약속했다.
야당인 우파 네팔의회민주당(NCP)과 좌파연합전선 연립 정부는 하지만 내부 알력과 부패로 온전한 민주화를 성취하지 못했다. 와중에 96년 공산당계열 ‘마오이스트(NCP-Maoist)의 무장투쟁이 시작됐고, 2001년에는 황태자가 국왕을 비롯한 왕실 일가 7명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까지 빚어졌다. 새 국왕이 갸넨드라였다. 그는 2005년 2월 반군 진압에 대한 내각의 무능 등을 들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내각을 해산하고 주요 정부기관과 언론을 장악했다. 절대군주제 회귀를 위한 사실상의 왕실 친위 쿠데타. 그에 맞선 시민 항쟁과 마오이스트의 무력 투쟁. 왕은 2007년 12월 28일 권좌에서 쫓겨났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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