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게이트 추진력 상실하고도
찬성 진영 요구 담아 ‘불씨 살리기’
내년 당장 국정교과서 시범 적용할
연구학교 지정 놓고 학내 갈등 예상
野, 국정교과서 금지 법안 추진
조기대선 이뤄질 땐 폐기 가능성
‘신의 한 수인가, 역사교육 부실의 원흉인가.’
27일 교육부가 발표한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적용 방안은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현장 적용이란 당장의 명분(연구학교 선정)을 살리면서, 퇴로(1년 유예 뒤 국정 검정 혼용)도 마련했다. “찬반 절충안”이라는 이준식 부총리의 언급은 그런 뜻이다. 교과서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쟁점이라면 묘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상 폐기 운명에 놓인 국정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집착은 앞으로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검정교과서 졸속 개발, 불필요한 교내 갈등 양산, 각기 다른 교육과정에 따른 학부모 학생들의 혼란 등 백년지계여야 할 교육은 이번에도 교육현장을 외면했다.
당장 내년 상황부터 따져보자. 전면 적용 대신 택한 시범(연구학교) 적용은 국정교과서 찬반 논란의 공을 학교에 던진 꼴이다.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되려면 학부모 교사 주민 등으로 꾸려진 학교운영위원회가 의견을 모아 학교장에게 건의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데, 반대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일부 사립학교법인들은 역사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입장이라 학내 의견 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교과서연구팀장(경기 부천 중원고등학교 교사)은 “재단 입김이 강한 사립학교나 학교장이 국정교과서를 원하는 학교에서 구성원 간 충돌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더구나 교과서를 배우는 학생들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조왕호 서울 대일고등학교 교사(미래엔판 검정교과서 필자)는 “국정교과서를 쓰겠다고 나서는 곳은 보수적 사학법인일 가능성이 큰데 그 학교 소속 학생은 학습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국정교과서를 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연구학교의 장점은 학교가 연간 1,000만원씩 금전 지원을 받는다는 것과 2015개정 교육과정을 담아 2019년 말에 치러질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현행 검정교과서(2009개정)를 배운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 정도다. 2014년 우(右)편향 논란에 시달린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곳이 단 1곳에 그친 전례를 감안하면 불필요한 갈등만 낳고 실효성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 대다수 학교가 채택할 것으로 보이는 검정교과서를 배운 학생들은 2019년 말 수능이 걱정이다. 교육부는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대입에 민감한 학생들에겐 무책임한 해명이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두산동아판 검정교과서 필자)는 “2019년 말에 치러지는 수능도 기존 검정교과서 체제 속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발 기간을 6개월이나 줄인 검정교과서의 부실도 우려된다. 조한경 팀장은 “관련 규정에는 (검정교과서 개발이) 1년6개월이라고 하지만 최소 2년 정도 걸린다”라며 “그걸 1년으로 단축하면 6개월 쓰고 6개월 검정해야 하는데, 그러면 부실 교과서가 된다는 건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개발 기간에 2년을 주는 국정교과서와 비교해서도 불공정한 일”이라는 것이다.
새로 개발될 검정교과서 내용 전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교과서에 적용된 편찬 기준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최병택 공주교대 교수는 “편찬 기준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국정교과서와 다를 바 없는 검정교과서가 개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도 “국정화를 밀어붙일 때 만든 교육과정 상의 여러 문제를 다 안고 가는 것”이라며 “교육과정부터 새로 잡는 게 옳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바람과 달리 국정교과서 자체가 폐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고, 유력하게 거론된다. 야당이 국정교과서 금지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고, 내년에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국정교과서의 운명은 차기 정부가 결정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은혜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사실상 국정교과서를 지키기 위한 꼼수”라며 “금지법 통과를 위한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세종=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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