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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일등석? 프리미엄 고속버스 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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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일등석? 프리미엄 고속버스 타 보니…

입력
2016.12.2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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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고속버스가 지난달 25일 정기 운행을 시작했다. 지난 6월 최정호 국토교통부 제2차관이 촬영 모델(?)로 나섰던 프레스 행사를 비롯해 이 버스를 소개하는 기사들에는 대개 ‘지상에서 만나는 퍼스트 클래스’같은 찬사가 달렸다. 정말로, 일반인은 평생 한번 타 보기도 힘든 비행기 일등석에 비견될 만큼 편안하고 고급스러울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부산~서울 노선을 타 봤다.공정한 리뷰를 위해 전날 같은 시각에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갔음을 미리 밝힌다.

프리미엄 우등 고속버스. 현대자동차 뉴 프리미엄 유니버스 노블을 개조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프리미엄 우등 고속버스. 현대자동차 뉴 프리미엄 유니버스 노블을 개조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부산 고속버스 터미널 승강장에 정차된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찾았다. 번쩍이는 황금색에 영어 알파벳으로 ‘Premium Gold’라고 떡 새겨놓아 찾기는 쉬운 편이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기념 촬영을 하는 시민도 있었으니 외관 차별화는 성공한 듯하다. 부산에 지역적 기반을 둔 천일고속 소속 차였고, 정오가 되자마자 기사는 승객들에게 소요 시간과 목적지를 안내하고는 바로 출발했다.

실내에는 새 차 특유의 냄새가 어렴풋이 남아 있었는데 심하지 않았다. 이산화탄소를 자동으로 배출하는 능동형 환기 시스템을 달았다더니 일단은 쾌적하다. 28인승 우등 고속버스에서 좌석 7개를 덜어내고 캡슐형 밀폐 공간을 만드느라 실내 통로가 무척 좁았다. 짐을 들고 자리를 찾아 가는 건 불편하지만 일단 착석하면 멈출 때까지 일어설 일이 없으니 이해할 수 있다. '뽕짝' 걸쭉하게 틀어놓고 춤판을 펼칠 것도 아닌데 뭘.

시트는 몸이 닿는 부분은 패브릭, 테두리와 커버는 인조가죽으로 감싼 구조였다. 팔걸이 폭이 넓고 이중으로 만든 목 받침이 있어서 착석감이 편안하다. 특히 비행기 프리미엄 시트처럼 시트 하나하나가 쉘로 감싸져 있어서 앞뒤 승객을 신경 쓰지 않고 거의 눕다시피 시트를 펼칠 수 있어 무척 편하다. 제조사에 따르면 160도까지 펼쳐지는데 앞쪽 쉘 안으로 발 받침이 있어서 전동식 버튼을 눌러 시트를 펼치면 거의 누울 수 있는 수준이다. 천장에 달린 커튼을 펼치면 옆 사람의 시선을 완전 차단할 수 있어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된다.

프리미엄 우등 고속버스의 실내 전경. 현대자동차 제공
프리미엄 우등 고속버스의 실내 전경. 현대자동차 제공

앞좌석 쉘 뒷면에는 10.2인치 인포테인먼트 화면과 옷걸이, 컵홀더가 달려 있다. 플라스틱 접이식 테이블을 꺼낼 수 있는데 흔들림이 심하고 테이블 길이가 짧아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기엔 미흡했다. 간단한 스낵을 놓거나 잡지를 편하게 보는 정도의 기능성이다. 다만 떨림이 심하고 플라스틱 재질의 결합 부위는 내구성이 떨어져 보인다.

여기서 잠깐, 흔들림이 심하다고? 실제로 그랬다. 내가 탑승한 버스만 유독 심했는지 모르겠지만 창틀 내장재에서는 계속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바닥에서 지속적으로 진동이 올라왔다. 당연히 승차감도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 왼쪽 팔걸이가 떠는 정도(동영상 참고)는 꽤 심했는데 특정 차종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시트를 완전히 160도까지 펼쳐서 누우니 떨리는 증상이 다소 줄어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프리미엄 자세’를 유지했다.

휴대폰을 연결해 휴대폰의 콘텐츠를 모니터로 볼 수 있는 미라캐스트는 안드로이드 시스템 기반이어서 iOS는 불가능했다. 반면 OCN, 채널 CGV, 슈퍼액션 등 위성방송을 통해 볼 수 있는 영화 채널이 많아서 아쉬움을 덜어준다. 무엇보다 시트 자체에 USB 단자가 있어서 휴대폰을 충전하기 편했다. 급한 화장실 용무 같은 상황에서는 화면을 터치해 '스톱바이'를 해 둘 수 있다. 출발 전 아주 급한 일이 아니라면 화장실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기사 분이 넌지시 이르긴 했지만.

프리미엄 고속버스 실내. 승객에게 어메니티를 제공하며 비상용 해머가 달려 있다. 최민관 기자
프리미엄 고속버스 실내. 승객에게 어메니티를 제공하며 비상용 해머가 달려 있다. 최민관 기자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어메니티를 제공한다. 수면용 안대와 줄이 정말 긴 이어폰과 1회용 슬리퍼가 들어있다. 품질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지만 필수품이다. 이어폰 잭이 앞좌석 쉘에 설치되어 있어 휴대전화 이어폰의 경우 누워서는 사용하기 어렵다. 응급 상황 발생 시 필요한 비상용 해머가 창틀 기둥 곳곳에 붙어 있다. 법적 기준 2배 이상인 8개가 비치되어 있다. 위급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이다. 시트와 칸막이 등 내장재는 모두 불연 소재로 만들었다.

낮 12시 정각에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을 켜니 4시간 33분 소요, 남은 거리 385km라는 안내가 떴다. 부산 노포에서 출발해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사이 173km를 달려 중간기착지인 선산휴게소에 들렀다. 15분 가량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누군가 몰아주는 자동차가 이렇게 편한 줄 미처 몰랐다. 독립적인 공간과 혼자만의 휴식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무엇보다 통풍 시스템이 괜찮아서 답답함이 덜했다. 너무 덥거나 건조하거나 혹은 추워서 불쾌한 기분이 들던 기억과는 이제 안녕이다.

안성휴게소를 지날 무렵 다시 내비게이션을 켰다. 이제 목적지까지는 55km 가량 남았고 출발 이후 3시간 40분이 흐른 뒤였다. KTX와 이동 시간을 비교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서울에 들어오니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가 위력을 발휘했다. 정체된 차들을 스쳐가며 나 홀로 질주하는 버스와 승합차들의 혜택이 새삼스럽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도착 시간은 오후 4시 18분. 휴게소에서 멈췄던 시간을 제외하면 주행시간만 4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해석할지는 목적에 따라 다르겠다는 생각이다.

탑승 이후 며칠 동안 프리미엄 고속버스의 예약 상태를 확인하니 특정시간 대는 만석이었고 평일 낮 시간은 대부분 여유 좌석이 많았다. 특히 밤 10시 심야 요금(4만8,800원)이 적용되기 직전에 출발하는 노선은 대부분 만석이었는데, 4~5시간을 버스에서 편하게 자면서 이동하는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할증 요금이 붙어 서울~부산 편도 요금이 5만3,200원인 새벽 2시 출발 좌석은 여유가 많은 걸 보면 가격 저항도 분명 존재한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KTX 요금이 약 6만 원, 우등 고속버스가 3만4,200원(일반 2만3,000원)인데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4만4,400원으로 우등 고속버스보다 30% 높은 수준이다.

◆서울~부산 고속버스 요금 (단위: 원)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KTX나 비행기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애초 고객 서비스를 높이자는 취지는 일정 부분 이뤄낸 듯하다. 하지만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쓰는 비즈니스맨이 KTX를 마다하고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탈 일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KTX나 비행기의 경우 오후 10시 이후 운행이 없으니 애매한 1박 2일 출장이라면 야간에 편안하게 자면서 귀경하는 일정만큼은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가장 빠른 교통수단인 비행기가 지닌 딜레마, 그러니까 김포에서 김해까지는 55분 걸리지만 번잡한 수속 과정과 집에서 공항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는 상황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인다. 다만 빠른 이동 시간이 의미 없거나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은 저렴한 교통수단을 찾기 마련인데,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일반버스의 운행 빈도가 줄어들 우려 또한 있다.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잘 안착하려면 철저한 수요 예측과 적절한 노선 투입, 일선 현장에서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수요가 풍부한 야간 장거리 노선에 2층 버스를 투입하는 것은 어떨까? 일본에서 JR 고속버스를 타본 경험이 있는데 화장실을 가진 2층 버스가 의외로 편했던 기억이다. 고속버스 운송원가의 40%가 유류비인데 운송 고객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국내 브랜드에서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현재 서울과 부산, 서울과 광주 구간만 운행하지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내년에 노선을 확대할 예정이다. 예약은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www.kobus.co.kr)나 앱으로 할 수 있고 터미널에서 구입도 가능하다.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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