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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내부고발자의 용기

입력
2016.12.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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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 한 번 실패하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때 옛 직장 선배가 일을 같이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내겐 마른 땅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선배는 막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단계여서, 우리는 사무실을 알아보고 직원을 채용하는 일부터 해나갔다. 회사에서 내 위치는 중간관리자였다. 작은 회사라 중간관리자는 모든 구성원의 커뮤니케이션 통로였다. 사장은 나를 통해 직원을 평가하고 직원은 나를 통해 사장을 파악하고자 했다. 심지어 투자자가 사장의 동태를 파악하고자 할 때 나를 불러서 이것저것 물었다.

내 모든 언행의 기준은 회사를 살리는 것에 있었다. 나는 당시 경제적으로 매우 절박한 상황에 있었기에 반드시 회사를 잘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누구 편을 들고 어느 편에 붙고 할 여유 같은 건 사치였다. 시간이 지나며 회사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직원들은 즐겁게 일했고 투자자는 잘하고 있다고 독려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자금의 흐름이 투명하지 않아지기 시작했고 내가 그 점을 사장에게 물어봐도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사장이 내게 신뢰와 권한을 그만큼 줄인 것이로 생각하면서도 내 할 일을 해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일은 터졌다. 내가 알기로 자금은 충분히 있는데 직원들 급여 지급이 조금씩 미루어졌다. 사장이 다른 부분에 자금을 유용한 것 같았다. 몇몇 직원들은 노동청에 고발하겠다고 나서고, 투자자는 아는 것 다 말하라고 내게 압박을 해왔다. 당시 나는 자금 부분에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투자자와 사장이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나는 양쪽 모두에게 욕을 먹었다. 투자자는 내가 사장과 한통속이라고 했고 사장은 나더러 내부고발자라고 했다.

그 시끄러운 두세 달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이 옳은 행동인가. 무엇이 모두를 살리는 길인가. 사장은 어려운 나를 도와준 사람이었고, 직원들은 나처럼 당장 먹고살기가 급한 사람들이었고, 투자자는 사업 기회를 준 고마운 분이었다.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만을 말하기로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다. 투자자가 사무실을 다 뒤집고 조사할 때 숨김없이 응했으니 내 생애 처음으로 내부고발자가 된 것이다. 밀린 급여를 받은 직원들만 내게 고마움을 표했을 뿐, 투자자와 사장은 끝까지 나를 매섭게 대했다.

요즘 청문회에서 내부고발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용기에 새삼 몸서리치게 된다. 작은 회사의 일에도 평생 남을 상처를 갖게 되는데, 국가의 중대사를 놓고 바른말을 하는 그들은 얼마만큼의 용기를 가져야 하는 걸까.

한 내부고발자가 “처벌받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고맙고 부끄럽고 미안해서 눈물이 나왔다. 올 한해 들었던 가장 울림이 큰 말이었다. 왜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저 한마디를 못해서 온 국민을 분노에 떨게 하는가.

우리나라는 내부고발자를 배신자로 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전문가들은 이런 인식부터 바꾸자고 한다. 내부고발은 더 큰 사고를 막고 그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예방주사가 된다. 당연히 조직은 내부고발자를 좋아하지도 보호하지도 않는다. 내부고발자는 그 조직을 견제하는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 내부고발자는 배신자가 아니라 그 조직과 사회의 영웅이다. 범인을 잡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증인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게 잘 되면 더 많은 범인이 잡히고 범죄는 줄어든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처벌받을 용기를 낸 한 사람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야 결국 모두가 산다.

올바른 세상은 다수가 만든 제도와 개인의 양심이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만들 수 있다. 좋은 제도를 갖춘 곳이 선진국이다. 제도를 만든 사람들마저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촘촘한 그물망, 거기에 선진국의 토대가 있다. 그걸 만드는 일은 처벌받겠다고 다짐하는 개인의 양심보다 훨씬 급하고 쉬운 일이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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