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제2의 최고은 막지 못할 ‘최고은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2의 최고은 막지 못할 ‘최고은法’

입력
2016.12.26 04:40
0 0

문체부 복지재단 등록해야 지원

3년 안에 발매된 곡 등 이력 제출

연간 120만원 수익사실 증명해야

자격 갖춰도 서류 증명 작업 복잡

“대상 확대 등 개선방안 마련해야”

서울 홍익대 거리에서 6년째 밴드활동을 하는 정모(35)씨는 본업인 기타리스트로 사는 날보다 부업인 기타 선생님으로 지내는 날이 더 많다. 평일에는 주 3일 8시간씩 학원에 나가 기타를 가르치고 주말에는 개인레슨을 한다. 휴일도 없이 일하고 정씨가 버는 돈은 월 150만~200만원. 공연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면 겨우 생활비 수준이다. 정씨는 25일 “창작준비금 지원제도를 알아봤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창작준비금은 고용보험 미가입자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데 정씨는 학원 기타강사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가수 달빛요정(본명 이진원, 2010년 11월 사망)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2011년 1월 사망)씨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2011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일명 최고은법)’ 및 ‘창작준비금’ 제도를 마련했으나 높은 진입장벽 탓에 정작 지원이 필요한 예술인들이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창작준비금은 예술인이 예술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일정 자격을 갖추면 1년 간 최대 30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 하지만 자격 요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우선 창작준비금 지원 대상이 되려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정식 등록해야 한다. 단 본인 이름으로 최근 3년 안에 발매한 곡이나 앨범 등 활동 이력을 제출해야 예술인으로 등록할 수 있어 생계를 꾸리기조차 버거운 청년 예술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A 인디밴드 리더 노모(38)씨는 “앨범 한 장 내는 데 1,000만원은 족히 드는 점을 감안하면 신인 음악가는 아예 지원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소리”라고 푸념했다.

다른 신청 방법은 예술활동을 통해 연간 120만원 또는 최근 3년간 36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린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연계에서는 이 또한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5인조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정모(40)씨는 2년 전 예술인복지재단의 문을 두드렸다가 크게 낙담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클럽공연에서는 멤버 한 명당 5만원씩 가져가는데 그마저도 현금으로 받아 소득을 증명할 수 없었다. 음원 수익 역시 월 7,000원이 고작이다. 정씨는 “현행 방식으로는 숨진 최고은씨도 지원금을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번거로운 조건에 가로막혀 실제 복지재단에 이름을 올린 예술인은 3만2,000여명에 그치고 있다. 정부가 추산하는 전체 예술인 규모(50만명)의 6%에 불과하다. 문체부가 지난해 실시한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도 1년간 예술활동 수익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36.1%에 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겨우 자격을 갖추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소득금액 증명, 건강보험 납부 여부 등 복잡한 증명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올해 7월 창작준비금 300만원을 수령한 박모씨는 “주민등록상 1촌 직계 소득 자료까지 다 검토하느라 서류작업에만 두 달 이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공연ㆍ예술계 관계자들은 예술활동을 전업과 비전업으로 구분하는 잣대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문식 전 뮤지션유니온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신진 예술가 절반 이상이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하는 형편”이라며 “정부가 예술인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업 예술가 위주로 지원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예술인복지재단 측은 “면밀한 검증 과정이 없으면 무자격 수혜자가 판을 칠 우려가 크다”며 “다만 예술활동 증명 절차를 좀 더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명했다.

양현미 상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다른 직업도 못 가지게 하면서 1년에 300만원만 주겠다는 발상은 창작활동의 저변을 넓히는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액수도 대폭 높여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