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분쟁, 갈등으로 얼룩진 한해였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25일 성탄절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점등하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고 더 나은 내일을 희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성탄 메시지로 “전세계의 고통 받는 어린이를 생각하며 성탄을 기념하자”고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선택했다.
이라크 모술 인근 바르텔라 마을의 마르 쉬모니 교회에서는 24일 밤 특별한 성탄 전야 예배가 치러졌다. 2013년 이후 3년만이다. 아시리아계 기독교인이 모여 살던 이 마을은 2014년 8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점령됐다. IS는 교회 첨탑의 십자가를 떼고 성구와 성상을 불태웠다. 마을을 떠나지 않은 기독교인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거나 참수하며 개종을 요구했다.
올해 10월 이라크 정부군이 마을을 탈환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들은 교회의 십자가를 고쳐 달고 트리를 장식하며 성탄 분위기를 한껏 돋았다. 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중무장한 이라크 정부군이 혹시 모를 IS의 테러에 대비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날 수백명의 주민이 참가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한 무사 쉬모니 주교는 “기쁨과 동시에 슬픔을 느낀다. 삶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지만 IS가 이곳을 점령하며 너무 많은 것을 파괴했다”며 “다만 신이 늘 우리 곁에 있음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전쟁의 참상이 가득한 시리아 알레포에도 대형 트리가 세워졌다. 정부군이 알레포를 점령하며 포성이 멈춘 도시에서 내전으로 지친 시민들은 트리 점등식을 지켜보며 잠시나마 전쟁의 상처를 잊었다. 예수의 탄생지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서는 예수의 자비를 영원히 기억하자는 의미로 황금빛 장식으로 꾸민 트리를 세웠다.
지난 19일 트럭 테러로 12명이 숨진 독일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은 성탄절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붐볐다. 하지만 주최측은 밝은 조명과 음악을 자제했고, 거리에도 웃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대신 시민들은 테러 장소를 수백개의 초와 꽃으로 수놓으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시장을 찾은 한 독일인은 “테러가 겁도 나지만 비겁한 공격에 굴복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럽국가들은 공항과 기차역, 교회 주변에 대규모 경찰을 배치하며 테러 경계를 한층 강화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 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를 집전하며 “지저분한 구유에서 아기 예수와 같은 시련을 겪는 어린이들이 있다”면서 “어린이들이 폭격을 피하기 위해 지하에 숨어있고, 대도시 길바닥에 있으며, 난민을 가득 태운 선박 밑바닥에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쟁과 극단주의 세력의 잔혹행위에 시달리는 어린이, 도시 빈민가의 소외된 아이와 난민아동에 온정의 손을 내밀어 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교황은 또 “진정으로 성탄을 기리고자 한다면 갓 태어난 아기의 연약함과 그가 누운 곳의 온유함, 그를 감싼 배내옷의 따스함을 묵상(默想)해야 한다”면서 “신은 그런 곳에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성탄 정오 발표한 성탄 메시지 ‘우르비 에트 오르비(로마와 온 세계에)’에서도 전쟁과 테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며 “시리아와 이라크 등 세계 곳곳의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자”고 말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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