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하여튼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14대 대통령선거가 민자당 김영삼후보의 승리로 끝나고 난 1992년 12월 24일, 부산 대연동 초원복국집은 서울지검에서 내려온 검사들과 증인들로 북적거렸다. 대선을 2주 남기고 벌어졌던 부산기관장모임과 도청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이 이뤄진 날이었다.
그 해 12월 11일, 부산 초원복국집에는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을 역임하다 물러난 김기춘 전 장관과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들었다. 김영환 부산시장, 정경식 부산지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교육감, 박남수 부산상의 회장 등이었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딱 하나. 지역감정을 부추겨서라도 지역 출신인 민자당 김영삼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이었다. 14대 대선은 민자당 김영삼, 민주당 김대중, 국민당 정주영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고 ‘부동산 반값’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주영후보가 민자당 강세였던 울산과 대구 경북지역을 잠식하던 중이었다.
지역사회의 지도자이자 공무원이었던 이들의 노골적인 관권선거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들은 사전 정보를 입수한 국민당 측이 숨겨둔 녹음기에 낱낱이 기록됐고 이는 선거 전 엄청난 폭풍으로 몰아쳤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로 귀결됐다.
12월 18일, 위기를 느낀 영남권의 표는 결집했고 정주영후보는 역풍을 맞아 초라한 성적으로 낙선했다. 이후 현대는 정치보복이라 느낄만한 어려움에 처했고 모임을 주도한 김기춘은 홀로 기소된 후, 기소가 소멸되며 국회에 진출한 반면 도청을 한 이들은 모두 주거침입죄로 처벌됐다. 실로 권력의 힘이다.
30대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40대 말, 50초에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거친 그가 요즘 다시 노회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의 말로가 궁금하다.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