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화 10년… 착용률 33.6%
부모들 “꼭 필요” 공감하지만
고가의 장비 가계 부담으로
최소 1회 이상 교체 필요한데
“日처럼 구매보조금 지급하거나
무상대여 방안 고민을” 목소리
주부 류모(33)씨는 요즘 22개월 된 아들과 차를 타는 일이 고역이다. 단속이 강화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카시트를 구매했지만 자리에 익숙지 않은 아이는 앉기만 하면 숨이 넘어갈 듯 악을 쓰며 울부짖기 일쑤다. 류씨는 23일 “당국이 카시트 의무 착용 규정을 충분히 홍보했다면 여유 있게 적응시켰을 것”이라며 “게다가 벌금부터 올리고 갑자기 단속을 강화하는 건 세금만 걷겠다는 발상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부터 동승한 아동(0~6세)을 카시트에 앉히지 않았을 때 부과하는 과태료를 기존 3만원에서 6만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 갔다. 계도 기간은 내년 2월까지다. 안전을 위해 카시트 장착이 필요하다는 설명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다만 카시트를 착용하지 않아 아동 교통사고가 급증한 만큼 규제 강화가 해법이라는 정부 논리와 달리 부모들은 현실적 제약을 감안하지 않은 과태료 인상 방침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경고의 성격이 강하다. 2006년 카시트 장착을 의무화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의 착용률은 95%를 웃도는 독일, 영국의 3분의1(33.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 원인의 70%가 안전띠ㆍ카시트 미착용 때문이라는 조사가 잇따르면서 정부가 ‘안전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사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과태료나 규제 수준은 낮은 편이다. 영국은 카시트 미착용 시 최대 500파운드(약 74만원), 미국은 500달러(60만원)를 부과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출산 후 차량에 카시트가 없으면 아예 퇴원을 불허하기도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부분의 영ㆍ유아 교통사고가 카시트를 착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점을 감안해 처벌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부모들 역시 카시트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2012년 한 유아용품 업체가 임신부 658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97.9%(644명)가 ‘카시트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정부가 충분한 홍보ㆍ계도 기간과 지원 대책 없이 사실상 카시트 구매만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조사에서도 카시트 장착이 의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비율이 32%(212명)에 달했고, 최근 육아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카시트를 착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느냐”는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 실제 2007년 카시트 착용 홍보 포스터 2만부를 공공장소에 부착한 이후 별도의 정부 홍보 활동은 없었다. 단속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카시트 단속건수(1~10월)은 670건으로 안전벨트 단속건수(143만건)의 0.1%에도 못미친다 서울의 한 일선서 교통조사계 관계자는 “앞자리 안전띠는 단속하지만 카시트까지 살필 시간적 여유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값비싼 카시트 비용은 불만을 더하는 요인이다. 영ㆍ유아용 카시트 가격은 보통 20여만원, 입소문을 탄 제품은 40만원대를 훌쩍 넘는다. 교통안전공단과 한국어린이안전재단에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무료보급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저소득층이 아니라 해도 가격이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다. 한 번 산다고 끝도 아니다. 아동 발달 시기에 맞추려면 최소 한 번 이상 교체가 불가피하다. 두 살 난 아들을 둔 이모(35)씨는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학부모들에게 카시트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무상 대여하고 있다”며 “아동안전을 위한다면 과태료를 올리기에 앞서 구매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카시트 착용은 교통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단계적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며 “적어도 가정마다 한 개는 구매할 수 있게끔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저가 대여 정책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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