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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다른 길로 향하는 한국과 미국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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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다른 길로 향하는 한국과 미국 민심

입력
2016.1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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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국을 주도하는 한 야당 의원을 보면 2013년 언론중재위원회가 떠오른다. 당시 기획재정부 출입기자였는데, 이 정치인으로부터 정정보도 신청을 받게 됐다. ‘쟁점금액을 불법정치자금으로 보아 (국세청이) 증여세를 과세한 처분은 잘못이 없다’는 조세심판원 결정문을 근거로 작성된 기사였다. 공공기관 통폐합을 모면하려던 한 공공기관 노조위원장이 투쟁기금을 조합원 명의로 의원들에게 후원금으로 냈다가 내부 고발로 사법처리를 받은 상태였다. 노조위원장 사법처리는 이미 알려졌으나, 적법 후원금으로 인정받지 못해 의원들이 이례적으로 증여세를 냈다는 건 심판원 결정으로 새롭게 드러난 터였다.

이 정치인은 ‘불법정치자금’이라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노조가 불법 조성한 것 일뿐, 자신은 몰랐고 정당한 자금인 줄 알고 받았다고 반박했다. 중재위에서 논리를 다툰 뒤, ‘정정보도’에 합의했다. 노조가 이런 식으로 로비대상 의원에게 후원금을 준다는 소문이 많았지만, 이 정치인이 몰랐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확인결과, 적법한 절차를 거쳐 후원금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조세특례제한법에 근거해 정치인에게 증여세를 부과한 첫 사례가 아니며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전직의원 4명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라는 정정보도문이 게재됐다.

‘불법 조성된 걸 알았다면 증여세만 내지 말고 전액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었나’는 의문도 들지만, 끝까지 선의를 주장한 정치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억울한 의혹이 제기되면 적극 대응하고, 상대방이 억울하다면 선의를 인정해주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자신은 가장 좋은 의도를, 다른 사람은 최악 실수를 잣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지적을 인용할 필요조차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원칙의 예외 대상이 되어 버렸다. 박 대통령은 측근을 잘못 관리한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기업에 재단출연금을 요청하고, 측근들의 비리 연루도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의도했거나 지시한 게 아니라고 맞선다. ‘억울하다’고 주장하지만, 한국 언론이 전하는 민심은 선의를 인정해주지 않는 모습이다.

워싱턴 교포 사회 민심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분노하는 사람이 다수지만, 박 대통령의 항변이 영 틀린 건 아니라는 사람도 꽤 있다. 한국에도 이름깨나 알려진 한 분은 “역대 정권이 모두 깨끗했는데 박 대통령이 그 전통을 깨고 대한민국을 비리투성이로 만든 건 아니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박 대통령만 유달리 극심한 저항에 직면했다면, 이유는 뭘까. 의혹만 제기하는 언론을 탓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해답은 국민에게 있다. 권력자의 부패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이 사라진 것이다. 경제만 살린다면 도덕성은 두 번째’라며 2007년 이명박을, ‘박정희 향수’에 2012년 그 딸을 뽑은 국민들이 ‘공정’, ‘투명’ 등의 단어로 상징되는 명분을 원하고 있다.

같은 정당에서 세 번 연속 대통령이 좀체 나오지 않는 미국을 보면, 민심 변화의 이유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원래 시계추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파 집권이 길어질수록 민심은 팍팍한 삶을 바꿔줄 막연한 변화를 원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를 막지 못한 것도 8년 민주당 정권에 대한 미국인의 막연한 염증 때문이다.

걱정되는 건 변화의 방향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실리와 임기응변인데, 우리 민심은 명분과 원칙이다. ‘명분에 빠져 국익을 해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보다 더 고상하고 절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조철환ㆍ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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