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독성 쥐약에 대한 규제 외에도 자연 보호, 윤리적 차원에서 거미줄 같이 촘촘한 규제를 시행하기로 유명하다. 이러한 전방위적 규제가 친환경 혁신과 공정무역 등을 선도하는 유럽의 위상에 걸맞은 체계라는 지지론도 있으나 반대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의 단초를 제공할 만큼 과도한 수준이라는 비난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EU를 떠나야 하는 20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국 국민들의 반감을 사는 EU 규제들을 소개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규제는 진공청소기 관련규제로, EU는 2014년부터 낮은 에너지 효율을 이유로 전력사용량 1,600와트 이상의 진공청소기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2017년 9월부터는 900와트 이상으로 판매 금지 기준이 강화된다. 하지만 유럽 국가의 일부 시민들은 규제로 인해 강력한 청소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청소기 외에도 EU 국가 시민들의 생활을 속속들이 바꾼 규제들이 영국인들의 원성을 샀다. 전력소모가 큰 백열전구의 생산ㆍ판매를 금지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며, 냉장고 등 백색가전제품을 유해물질 취급해 폐기 시 특별 절차를 거치게 한 것도 일반 가구에게 불편을 늘렸다. 그 외에도 쓰레기 매립에 높은 벌금 부과, 붉은색 여권 의무화 등의 규제가 영국인들의 조롱 거리로 전락하는 가운데, 텔레그래프는 “EU를 떠나면 영국은 적절한 청소기와 전구를 가질 수 있고, 멍청한 분리수거통을 보지 않아도 되며, 우리의 푸른색 여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EU의 복잡한 규제는 브렉시트 국면에서 포퓰리즘 선전 도구로 활용되면서 문제를 낳기도 했다. 대표적인 브렉시트 지지론자였던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은 국민투표에 앞서 “티백을 재활용할 수 없다거나 8세 이하 어린이는 풍선을 불 수 없다는 EU 규칙들은 터무니 없기 그지 없다”고 주장했으나 모두 실재하는 규제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영국인의 15%가 최소 한 개 이상의 ‘EU에 관한 오해’(Euromyth)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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