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전략核부대 전투력 강화”
트럼프도 같은 날 “핵 능력 확장”
“확산 금지 의미” 진화 나섰지만
수십 년 핵 감축 노력 허사 가능성
中 “핵 전면 금지해야” 자제 촉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같은 날 잇따라 자국의 핵전력 강화를 선언, 미ㆍ소 냉전시대 핵 군비경쟁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22일 미국의 핵 능력을 대폭 강화ㆍ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와 관련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의 언급은 푸틴 대통령이 핵전력 강화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지 몇 시간 만에 나온 것으로, 러시아의 돌발적 행동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모스크바의 한 국방문제 연설에서 “전략 핵무기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특히 현존하거나 앞으로 개발될 미사일 방어체계를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미사일의 성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당선인과 푸틴 대통령이 동시에 핵전력 강화론을 펴면서 내년 1월 트럼프 집권 이후 미ㆍ러 양국의 ‘핵 치킨 게임’ 돌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양국이 핵무기의 수와 크기를 줄이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노력을 되돌릴 수 있는 새로운 군비 경쟁의 망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옛 소련이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온 핵무기 감소 추세가 멈추거나, 증가세로 돌아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신문은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제시한 ‘핵무기 없는 세계’정책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이 나온 이후 미ㆍ러는 1991년 체결돼 만료된 전략무기감축협정을 대체할 후속협정 협상을 1년 만에 마무리 짓고, 이듬해 양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조인식을 했다. 당시 협정은 양국의 장거리 핵탄두를 2,200기에서 1,600기 수준으로 줄이고, 지상과 해상에 배치된 미사일을 1,600기에서 800기로 감축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미국의 대러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핵무기 감축 협력에 제동이 걸렸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지난 10월 “미국의 비우호적 행동으로 전략적 안정성에 대한 위협이 생기고 있다”며 미국과 체결한 무기급 플루토늄 관리 및 폐기 협정(PMDA)을 잠정 중단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미국과의 핵 군비 경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의 트위터 언급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제로 핵군비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글자수 제한(140자)이 있는 트위터로 중요한 핵 문제를 언급한 게 경솔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단적으로는 러시아,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질과 양적인 측면 모두에서의 핵 경쟁을 뜻할 수도 있고, 반대쪽으로는 핵무기의 질적 개량을 추구해온 오바마 행정부의 기존 전략을 답습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미 군축협회 대릴 킴벌 소장은 “트럼프와 측근은 아리송한 트위터의 의미를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이 나오자, 트럼프 당선인 측도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의 제이슨 밀러 대변인은 “당선인의 발언은 핵확산 위협에 대한 언급으로, 핵무기가 테러리스트들과 불안정한 불량 정권들에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한편 미러 양국에서 핵무기 강화론이 불거지자 중국이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중국 측은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고 철저히 폐기하자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라며 “최대 핵무기를 가진 국가는 핵감축에 대한 특수하고도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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