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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속 희망인데 두고 볼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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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속 희망인데 두고 볼 수 없죠"

입력
2016.12.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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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화재현장 발굴 신무순씨

화재 현장서 금고ㆍ제품 수색 앞장

붕괴 위험 속에 금고 40여 개 발굴

지하창고 20톤, 옥상서 30톤 찾아

"힘 모아 다시 일어서야죠"

서문시장 4지구 잿더미에 묻힌 금고 구한 신무순 씨.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서문시장 4지구 잿더미에 묻힌 금고 구한 신무순 씨.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화재현장에서 찾아 낸 타다 만 장부.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화재현장에서 찾아 낸 타다 만 장부.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서문시장 현장 발굴 작업 중 한 상인이 흐느끼며 쓸 수 있는 부분이라도 살리려고 타다만 천을 자르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서문시장 현장 발굴 작업 중 한 상인이 흐느끼며 쓸 수 있는 부분이라도 살리려고 타다만 천을 자르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신무순 씨가 금고 발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신무순 씨가 금고 발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신무순(왼쪽)씨가 화재현장을 방문한 상인들을 인솔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신무순(왼쪽)씨가 화재현장을 방문한 상인들을 인솔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4지구 옥상창고 앞, 신무순 씨가 피해 복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4지구 옥상창고 앞, 신무순 씨가 피해 복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상인들에겐 돈이나 상품 그 이상 중요한 게 장부다. 여긴 도매상이 많아 외상 거래가 많은데, 내역을 기록한 장부가 없으면 재기는 물 건너간다. 우린들 위험한 줄 모르겠나. 욕 먹으면서도 잿더미를 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달 30일 큰 불로 전소된 서문시장 4지구 상가에서 지난 20일까지 잿더미 속을 헤맨 신무순(58)씨. 자신과 동료 상인들의 금고와 장부, 타다 남은 상품을 찾아낸 신씨는 시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4지구 상인 모두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서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씨는 서문시장에서 30년간 장사해 온 터줏대감이다. 요즘 상인들 사이에선 '구원투수' 로 통한다. 대부분 불에 타버렸지만, 신씨 주도로 시작한 금고수색과 재고 발굴 등을 통해 재기의 실마리를 찾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재산 대부분을 날렸지만, 타다 남은 원단이나 장부, 현금은 우리 피해상인들에겐 정말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가 금고 발굴에 나선 것은 지난 4일. 잔불정리가 막 끝난 다음 날이다. "저도 가게에 남겨둔 금고 속 귀중품이 혹시 남아있지 않을까 기대감에 다른 상인들과 시작했다"며 "구청 측을 설득해 모든 책임을 우리가 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현장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귀금속과 일반 액세서리 등을 취급하는 신씨는 이번 불로 수십억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금고가 4개인데, 보통 영업 후 금고 안에 보관하던 귀금속 대부분을 진열대에 그대로 두는 바람에 금고 안에 넣어 둔 일부만 건질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장 진입 전에 그는 먼저 금고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이 내화기능을 갖춘 최신 특수금고는 그 정도 불길에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100㎏이 넘는 무게 때문에 금고 자체를 외부로 끄집어 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해 현장에서 열기로 했다"고 수색 배경을 설명했다. 자신의 금고만 열려다가 비상대책위원회 재무간사를 맡으면서 비슷한 처지의 다른 상인들과 힘을 모았다.

4, 5명 단위로 조를 짰고, 지역 금고 전문가 2명과 경찰 소방 구청관계자들이 동행했다. 지난 4일 하룻동안 무너지지 않은 4지구 동쪽 1~3층에서 40여 개의 금고를 찾아냈다. 마스크는 기본이고 방진복과 안전모, 안전화를 착용한 채 조심스레 현장에 진입했다. 상인들은 자신의 금고가 있는 곳으로 전문가들을 안내했다. 금고 하나를 여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0분. 하나씩 열릴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기뻐서, 때로는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금고 대부분이 원래 자리에 있어 전문가들이 큰 어려움 없이 열 수 있었다. 남은 게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대부분 멀쩡했다. 일부 불에 탄 것들도 현금 같은 경우 한국은행에서 교환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수십억 원은 건졌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상인들 상당수는 보통 장부를 금고 안에 두지 않아 어쩔 수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1차로 금고 발굴이 끝난 뒤 상품 수색을 시작했다. 신씨는 "상인들은 우선 자신의 가게가 어떤지 궁금해했다"며 "귀중품을 넣어둔 금고 부분이 정리돼야 2차 발굴이 가능할 것 같아 금고부터 수색했는데, 대부분 찾았고 일부 찌그러진 2, 3개는 철거 후 들어내 특수장비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고 수색 당일 건물 바깥쪽 상가를 수색했고, 7일엔 지하층, 14일엔 옥상 수색에 들어가 20일쯤 수색을 거의 마무리했다. 지하 창고에선 멀쩡한 양복 원단과 한복 등 1톤 트럭 20대 분량을 찾아냈다. 붕괴 위험 때문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옥상 창고에선 1톤 트럭 30여 대 분량을 끄집어 냈다. 신씨는 “옥상 창고 7개 내부는 불 냄새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며 "완전 망한 줄 알았던 한 이불집 사장은 멀쩡한 이불을 보곤 '이젠 살았다'며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을 보고 '내가 정말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금고발굴 과정에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돈이 많아서 저렇게 한다", "자기 금고에 많은 귀중품을 넣어 두었으니 앞장선다"는 등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1주일 이상 잠도 못 자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잿더미를 뒤졌는데,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했다"며 "모두 너무 큰일을 당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여기고 수색에 전념했더니 오해가 풀렸다"고 말했다. 처음엔 만류하던 가족들도 먼저 안전모를 챙겨주는 등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요즘 남은 지역을 어떻게 안전하게 발굴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재기를 위해선 한 푼이라도 더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철거작업과 함께 금고나 집기 등을 발굴해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안전발굴을 장담하기 어렵다.

신씨는 "무너진 쪽 상인들은 지금도 밤잠을 못 이룬다"며 "할 수 있는 데까진 발굴하고, 대체상가로 지정된 옛 베네시움 건물에서 하루빨리 영업을 재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설 전이라도 장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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