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일
짝퉁이 진품보다 판을 치고
허울 좋은 거짓이
진실보다 더욱 진실해 보이는
요지경 같은 세상
모르는 바 아니지만
보험금 타 먹을 심산으로
간단한 접촉사고에 입원한 정형외과
환자보다 더 진짜 같은
부지기수의 거짓 환자들
저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외면된 진실을 동경하지만
눈앞의 이익 흔들리지 않을 사람 없듯이
보험금 받아서
마누라 속내 앓아 십여 년 만
새로 장만한 세탁기
땀으로 얼룩진 옷가지
허울 좋은 거짓으로만 세탁되는 건 아닌지
시인소개
허행일은 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계명대 국어국문학과를 중퇴하고 안지랑문학지(95년)에 시 “바람맞는법”을 발표한 후 문단에 나와 영남일보칼럼니스트(09년)로 활동하였다. 현재 한국시민문학협회 사무처장, 낙동강문학 발행인과 봉사단체인 “대구를사랑하는사람들”의 회장을 맡고 있다.
해설 김인강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힘든 요즘 세상에 환자 아닌 환자가 공공연히 병실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덕적 해이’의 만연이라 하겠다.
그것을 아주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작은 접촉사고로 인해 보험금을 타 세탁기를 장만했지만, 마음 한 쪽 작은 양심이 물살에 요동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 나만 이익을 누리면 된다는 생각에 그 모든 피해는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무섭고 부끄러운 현실 속에서 우리도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닌지, 검은 마음부터 먼저 씻어내며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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