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트럭 조사 중 신분증 발견
튀니지 출신 20대 용의자 지목
“獨 정부 감시 549명 중 하나”
범죄 경력 추방 없어 “방관” 비난
독일 수사당국이 21일(현지시간)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트럭 테러를 벌인 용의자로 튀니지 출신 난민인 20대 남성을 지목하고 현상수배를 거는 등 전방위적인 체포 작전에 돌입했다. 다만 해당 인물은 올해 초 이미 독일 대테러 당국의 감시를 받았던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으로 확인돼 독일 당국의 허술한 보안 망에 거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BBC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검찰은 이날 트럭 테러 사건 용의자로 튀니지 출신의 난민인 아니스 암리(24)를 지목하고 현상금으로 10만유로(약 1억2,460만원)을 내거는 등 공개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암리가 검은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갖고 있다”고 인상착의를 밝힌 뒤 “매우 폭력적이고 무장을 한 상태이니 (암리를 목격하면) 직접 제압하지 말고 수사기관에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검찰은 암리가 6개의 가명을 사용했으며 때로 이집트인이나 레바논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독일 검찰은 범행에 쓰인 트럭을 조사하던 중 운전석 아래에서 암리의 지문과 지갑, 임시 체류증 등을 발견했다. 검찰의 조사결과 암리는 1992년 튀니지 남부 타타윈에서 출생했으며 지난해 6월 독일에 입국하며 정부로부터 임시 체류허가증을 발급 받았다. 암리는 올 6월 망명 신청이 거부된 뒤 추방유예 신분으로 그동안 독일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암리가 이미 독일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유럽연합(EU) 각국 수사기관에도 체포 협조를 요청했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부 장관은 이날 의회에 출석해 “수사당국이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암리를 쫓고 있다”고 보고했다.
문제는 독일 대테러 당국이 지난달까지 암리를 테러 위험인물로 감시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파리 테러로 유럽 내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됐지만 정작 유럽의 최대 난민 유입국인 독일의 안보망은 큰 허점을 노출했다는 지적이다. 스테판 마이어 독일 상원의원은 이날 의회에서 “암리는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인 ‘살라피스트’와 관련된 혐의로 독일 당국의 감시를 받았다”며 “그는 테러 연관 위험인물로 독일 정부기관의 감시를 받는 549명 중 한 명이었다”고 지적했다. 독일 언론들은 암리가 ‘아부 왈라’로 알려진 아흐마드 압델아지즈 아(32)가 이끄는 독일 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에도 연루됐다고 보도했다. 아부 왈라는 독일 내에서 조직원들을 규합해 시리아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보내려 한 혐의로 지난달 체포됐다.
독일 대테러 당국은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총기구매 비용을 대기 위해 강도질을 계획한 혐의로 암리를 감시하기는 했지만, 이후 그가 베를린 공원에서 마약 거래를 하거나 바에서 싸우는 것 이상의 중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이달 들어 감시를 해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암리는 대테러 당국의 감시가 느슨해지자 이후 종적을 감췄고 19일 베를린 시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트럭 테러를 벌여 독일인 6명 등 1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특히 독일 당국이 암리의 과거 범죄이력을 알고도 서둘러 추방 조처를 내리지 않으면서 사실상 테러를 방관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암리는 2012년 이탈리아에서 머물렀을 당시 방화 혐의로 4년을 복역했고, 과거 튀니지에서도 가중 폭행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찰은 사건 발생 사흘 뒤인 22일에야 트럭에서 암리의 지문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독일 정부는 이날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공공장소에서 폐쇄회로(CC)TV 설치를 확대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다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국민들은 과거 나치 시절의 게슈타포 같은 강력한 감시조직의 재등장에 예민하다”라며 “이에 따라 이 법안도 CCTV설치를 의무화하지는 않아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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