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한나라당 대표 때 첫 인연
金, MB 집권 후 사이 틀어져
劉, 원내대표 때 朴에 맞서다 수모
두 사람이 탄핵 주도 ‘악연’ 끝나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21일 집단 탈당 후 중도보수 신당 창당을 결의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을 끝냈다. 박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던 원조 친박인 두 정치인은 박 대통령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멀박(멀어진 친박), 비박(非朴)의 수순을 밟다 탄핵 가결로 애증의 역사를 종료했다.
상도동계 출신의 김 전 대표와 이회창계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때 사무총장(2005년)과 대표 비서실장(2004년)으로 기용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2007년을 뜨겁게 달궜던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과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의 투톱으로 호흡을 맞춰 이명박 후보와 날 선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뒤인 2008년 친이계가 주도한 18대 총선 과정에서 김 전 대표는 '친박 학살'의 희생양이 돼 낙천했다. 친박 무소속연대를 이끌며 귀환했지만 18대 국회는 박 대통령과 김 전 대표가 심정적으로 결별하는 시간이 됐다. 2009년 박 대통령의 만류로 원내대표 도전을 포기했던 김 전 대표는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 원안을 고수하려는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박 대통령은 "친박계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로 김 전 대표를 부정했다. 그런 김 전 대표를 친박계는 19대 총선 공천에서 낙천시킨다. 2013년 부산 영도구 재보선으로 19대 국회에 합류한 김 전 대표는 2014년 전당대회에 출마하지만 박 대통령은 서청원 의원을 지지했다. 그 이후 개헌 파동과, 유승민 사태, 20대 공천 정국에서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ㆍ친박계와 사사건건 맞서며 비주류 비박계의 좌장으로 거듭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선 당내 탄핵의 깃발을 가장 먼저 들었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을 향해 직언을 삼가지 않다가 멀어졌다. 2007년 당내 경선 때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를 만들기 위해 '이명박 저격수'의 선봉에 섰던 유 의원은 2011년에는 최고위원직을 던지며 박 대통령을 비상대책위원장에 앉혀, 정권 재창출의 공신이 됐다. 하지만 새누리당 당명 개정과 당 상징색의 빨간색 교체로 대립했다. 이후 박 대통령을 향해 "제대로 된 보좌를 못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문고리 3인방을 향해 "청와대 얼라들"로 비판하며 직언했다.
2015년 2월 원내사령탑에 오른 유 의원은 두 달 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증세는 없다’는 박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유 의원은 같은 해 6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2주간 버텼지만 결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강조하며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지난 4월 20대 총선에선 당이 지역구를 ‘무공천’ 결정을 하자 탈당한 뒤 당선돼 복당했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는 비박계 중 가장 강한 톤으로 탄핵을 주도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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