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정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지역간 수평전파를 막기 위해 산란계 농장에서 AI가 발생한 전국 35개 보호지역(3㎞)에서 일주일간 계란 반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대책은 발표 후 이틀이나 지난 21일에야 시행됐다. 대책을 추진하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했을 35개 보호지역 내 산란계 농장 수와 그들이 보유한 계란 수, 반출 금지 시 수급 영향 등에 대한 검토가 발표 이후에야 부랴부랴 시작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이날까지도 해당 수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방역을 위해 일단 강행하겠다”며 대책을 시행했다. 대책을 발표하는 데만 급급했을 뿐, 이를 위한 기본적인 조사나 산업적 파급력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정부의 총체적인 관리 부실이 사상 최악의 AI 참사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업무 태만과 늑장 조치, 사실 은폐, 그리고 허술한 대응까지 총체적인 문제점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살처분된 닭, 오리 등 가금류는 2,000만마리를 넘어섰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1일 현재 살처분된 닭·오리ㆍ메추리는 약 2,085만마리(살처분 예정 포함)에 달한다. 또 지난 16~17일 경기 과천의 서울대공원에서 폐사한 황새 2마리는 고병원성 H5N6형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태만-반복된 재앙에 준비 부족
국내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건 2003년. 13년 동안 AI가 벌써 9차례나 발생했지만, 정부는 재발을 막기 위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우선 수년간 AI 확산 원인으로 지목돼 온 열악한 농가시설이나 미흡한 방역의식에 단 한 번도 철퇴를 가하지 않았다. 13일 역학조사 결과 여전히 육용오리 농장의 69.5%가 비닐하우스 축사에서 오리를 키우고 있었다. 일반 건물과 달리 비닐하우스는 쥐 등 외부 동물이 들락거리기 때문에 바이러스 유입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준비된 백신도 없다. 그러니 백신을 접종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제서야 3개월 정도 걸려 ‘백신뱅크’를 만들겠다고 나섰을 정도다.
늑장-철새 탓만 하다 초반 실기
초기에는 철새 탓만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정부는 초기에 “철새로 인한 AI 발생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범정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한 건 AI 발생 26일이 지난 뒤였고, 위기경보를 최상인 ‘심각’ 단계로 격상한 것 역시 한 달이 지나서였다. 농가에서 AI가 발생한 당일부터 총리가 직접 나서서 위기관리센터를 가동시키고 위기경보를 최상으로 높인 일본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은폐-AI농장 계란 유통 안 알려
파장이 커질 것 같은 부분은 숨기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AI 의심신고를 한 세종시의 대규모 산란계 농장이 신고 직전에 계란 288만3,000개를 출하했고, 이 중 274만9,000개가 시중에 유통됐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알리지 않았다. 유통된 계란은 철저한 소독을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이 같은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건 책임방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당일 살아 있는 닭(생닭) 유통을 허용했다가 일부 지방자치단체 반대로 이틀 뒤 다시 금지한 것 역시 아무런 공식적인 발표 없이 이뤄졌다.
허술-앞뒤 안 재고 발표 먼저
계란 반출 금지처럼 여론에 떠밀려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들은 준비가 미흡했거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 정부가 지난 20일 계란 수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란 수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아직도 정확한 지원규모를 정하지 못한 것은 물론 수입의 효과나 부작용에 대한 분석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다. 김재홍 서울대 교수는 “정부의 방역 체계가 곳곳에서 구멍이 뚫려있었음이 확인된 만큼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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