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은 미국 대선 날이었다. 이미 한 달도 더 전에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끝난 대선이지만,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선거인단이 표를 던지고 당선이 확정된 것은 바로 이 날이다. 승리 이후에도 계속되는 자질 논란에, 러시아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며 선거인단이 반란표를 던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었으나 승부의 향방과는 관계가 없었다.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승리한 후 많은 사람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북동부 제조업 지대의 쇠락, 백인 저소득 노동계층의 분노, 백인 여성 표심을 얻지 못한 클린턴 캠프의 실책 같은 것들 말이다. 다만 이렇게 트럼프를 뽑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최대한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려 하다 보면, 이성에 앞서 어떤 감정이 욱하고 치밀어 오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절망에 가까운 감정이다.
그는 멕시코인을 성범죄자로 묘사했고, 장벽 설치를 주장했으며,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참전 용사의 부모를 모욕했다. 여성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발언을 쏟아냈고, 많은 여성이 그에게 성폭력 피해를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실제 여성을 저속한 말로 비하한 녹음파일이 공개되기까지 했다. 미국인들은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유권자들의 선택을 분석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 분명한 진실 또한 경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태평양을 건너 열 몇 시간을 날아야 겨우 닿을 저 먼 땅 사람들만 힐난할 일은 아니다. 이 나라에서는 이제 대통령이 어딜 행차할 때마다 전용 변기를 설치해야 했다거나, 세월호 수색이 한창 이뤄지던 때조차 계속해서 미용 시술을 받았더라 라는, 어이가 없어 두려울 정도의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 또한 국민이 뽑았던 대통령이다. 사상 최대의 촛불이라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쳤고 끝내 탄핵 소추되었으나, 그 와중에도 수만 명 규모의 시위대가 정부를 지켜야 한다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일전 친구는 한국 사람이 트럼프를 두고 뭘 그리 놀라느냐며 뼈있는 농을 던지기도 했다. 따져보면 그렇다. 유력 정치인이 안 예쁜 여자가 서비스가 좋다거나, 특정 직업은 다 줄 생각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했다. 이민ㆍ다문화 정책의 첨병에 섰던 다문화 대표 국회의원은 하지도 않은 일들로 힐난의 대상이 되었다. 인권변호사 출신 지자체장은 시민인권헌장 제정을 시도하다가 성소수자 조항이 문제가 되자 이를 폐기했다.
이것은 그저 일부 부패한 기득권 주류 세력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주류, 다수, 무엇이라 부르든지 좋다. 사람들이 그 뒤에 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이 말이다. 여성을 비하하는 농담을 공공연히 뱉었던 정치인은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근거를 왜곡하고 조작해가며 다문화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비단 일베와 같은 극우 사이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한 일간지에는 대학 학생회에 성소수자들이 진입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대부분의 댓글이 역겹다거나 짐승만도 못하다거나 하다는 비난이었다. 개중에는 동성애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규명해 이를 제거함으로써 깨끗한 인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30개의 찬성과 5개의 반대가 달린 댓글이다.
우린 어른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세태는 그 당위를 의심케 한다. 국경에 장벽을 쌓는 것이,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이 그 착한 일인 것일까. 인간은 존귀하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합의마저 뒤편에 미뤄둔다면, 대체 무엇을 착하다고 이를 수 있는 것일까. 트럼프를 당선시키고 인권을 부정하는 이 모든 것이 민중의 뜻이라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 또한 그저 거짓말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길 바란다. 우리가 부디 인간답기를 바란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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