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의 가치 따지는 ‘물물교환 등식’
‘퀸 사이즈 침대 = 박카스 2상자’ ‘유아용 미끄럼틀 = 라면 2봉지’
최근 한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진 물물교환 사례들이다. 그런데 한 눈에 봐도 1대1 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중고거래 시세의 격차가 워낙 크고 서로 연관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등식이 성립된 이유는 뭘까.
등호(=)는 두 물건의 필요 가치가 동일함을 뜻한다. 여기서 경제적 가치인 가격은 의미가 없다. 아이가 성장해 더 이상 미끄럼틀이 필요 없는 A에게 라면 2봉지의 필요 가치는 미끄럼틀보다 크다. 반면, 라면 단 2봉지로 아이가 좋아하는 미끄럼틀을 구한 B의 경우 횡재를 한 거나 다름없다. 그가 느낀 미끄럼틀의 필요 가치가 라면 2봉지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당사자 모두 이득을 보았으니 거래는 공평하고 성공적이다.
나에겐 필요 없지만 누군가엔 꼭 필요한 물건, 또는 나에게 필요한데 누군가엔 필요 없는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 물물교환이 인터넷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활발하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나 페이스북 물물교환 그룹에서의 거래는 아직 쓸만한데 필요 가치가 떨어진 물건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받고 싶은 물품을 밝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답글 형식으로 교환물품을 제시하기도 한다. 회원들은 게시판에 올라온 물건의 가격을 비교하기 보다 그 필요성을 따져 교환여부를 결정한다. 물물교환은 애초부터 정확한 등가(等價)교환이 불가능한 거래, 통념 속의 가격 불균형을 덤 혹은 정(情)으로 채우고 나면 마음 속엔 행복이 남는다.
온라인 커뮤니티ㆍ페북서 물물교환 활발
가격 불균형을 情ㆍ덤으로 채우면 행복
“강쥐(강아지) 집 교환해요~ 단감 15개랑요~” 경기 고양시에 사는 주부 김모(43)씨는 지난달 지역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자마자 답글로 ‘찜’을 했다. 마침 마트에 싸게 나온 단감을 넉넉히 사둔 터라 반려견의 보금자리를 부담 없이 장만할 수 있는 기회였다. 며칠 후 약속장소에 나간 김씨는 강아지 집 외에 꽤 많은 양의 사료까지 받아 들고 돌아왔다. 물건과 함께 마음까지 덤으로 받은 덕분에 김씨는 하루 종일 뿌듯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주부들을 중심으로 아동용품이나 살림도구 등 소소한 물건이 교환되는데 비해 SNS를 통하면 거래 무대는 전국으로 확대되고 교환물품도 다양해진다. 2014년 개설돼 현재 5,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페이스북 그룹 ‘공유하는 지구별 순환터(공지순)’에서는 직접 지은 농산물이나 수제로 만든 생필품, 먹거리 등이 주로 교환된다. 운영자 박미희(52ㆍ여)씨는 “물물교환을 하다 보면 불필요한 과소비는 물론 쓸모 없이 버려지는 것들도 함께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룹 공지 문구에서도 “무인도에서 금 한 덩어리를 취하겠습니까?”라며 필요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이 곳 회원들은 물물교환 시 중고 시세는 물론 가격을 유추할 만한 어떤 언급도 자제해야 한다.
인간이 교환의 수단으로 만든 화폐는 어느새 모든 사물의 값어치를 매기는 단위가 됐다. 사과 하나에 500원, 배추 한 포기 3,000원 식으로 물건마다 숫자가 매겨지면서 거래는 정확해졌다. 3,000원을 받고 배추 한 포기만 넘겨주면 그뿐, 고마울 것도 미안할 것도 없다. 하지만 물물교환은 다르다. 혹시 상대방이 손해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합의한 물건에 더해 직접 캔 고구마를 보내고, 꼭 필요한 물건을 제공해 준 이에 대한 고마움이 상자의 빈 공간을 소소한 정으로 채우게 만든다. ‘공지순’ 회원 천지영(49ㆍ여)씨는 “정확히 ‘얼마짜리’를 주고 받았다기 보다 정을 나누는 느낌이다. 말로 주고 되로 받아도 기분 좋은 것이 물물교환”이라며 만족스러워 했다.
‘나눔’ ‘드림’ 같은 기부의 재미도 쏠쏠
물물교환을 하다 보면 ‘나눔’ 또는 ‘드림’과 같은 기부의 재미도 쏠쏠하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이나 남는 음식을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며 느끼는 기쁨은 순식간에 전염된다. 나눔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정을 돌려 주며 행복을 키운다. ‘공지순’개설자 김은규(54ㆍ남)씨는 “처음엔 얌체족처럼 공짜로 얻어가기만 하던 회원들도 그룹 분위기에 동화되면 어느새 나누고 칭찬 받는 걸 즐기게 된다”고 말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권수진 인턴기자(한양대 철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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