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 젊은층 91% “대선 관심”
2012년 조사보다 10%p 안팎 증가
5060세대 관심도는 줄어 77~84%
세대별 투표율 처음으로 역전 예상
촛불 민심은 과연 어느 곳을 향할까. 지금 정치권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관심은 온통 촛불 민심의 방향에 맞춰져 있다.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두 번째로 열린 지난 17일 8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에서 77만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여전히 국민 다수는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일보ㆍ한국리서치가 탄핵 직후인 9~10일 실시한 여론조사의 예측(본보 12일자 보도)대로,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절차를 밟으면서 촛불 여론은 일부 관망세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촛불 민심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가 투표참여를 예측하는 선행변수인 세대별 선거 관심도 조사이다. 본보 조사를 토대로 이를 추적한 결과, 내년 조기 대선에서 선거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2040세대가 처음으로 5060세대의 투표율을 뛰어 넘어 대선판도를 좌우할 것이란 예상이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4월 공개한 유권자는 2040세대가 2,316만명으로 5060세대의 1,818만명 보다 500만명이나 많다.
이번 조사에서 “내년 대선에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심 있다”고 응답한 20대와 30대는 91.3%로 일치했다. 40대도 91.1%에 달해 2030세대와 비슷했다. 하지만 50대는 83.6%, 60대 이상은 76.8%에 그쳤다. 2007년 8월(EAIㆍSBSㆍ중앙일보ㆍ한국리서치), 2012년 6월(EAIㆍ한국리서치)조사와 비교하면, 2030세대는 상승하고, 18대 대선의 주요 변수였던 5060세대는 하락세가 뚜렷했다. 20대와 30대는 2012년 조사에서 “관심 있다”는 응답이 각각 80.5%, 82.9%였고, 2007년엔 각각 66.8%, 73.2%에 불과했다. 40대도 2012년(90.7%)과 2007년(81.0%)에 비하면 다소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2040세대의 선거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50대와 60대는 2007년엔 각각 82.9%, 89.7%였고, 2012년에는 각기 91.5%, 93.9%였지만 지금은 상반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세대가 높아질수록 선거관심도가 높았던 이전 조사와 달리 2040의 선거관심도가 5060세대를 압도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매우 관심이 많다”고 답변한 2030세대 응답자는 2012년까지 30%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이번 조사에선 70.4%(20대), 73.6%(30대)로 무려 40%포인트 이상 급증했다.
지난 18대 대선에선 2030세대의 선거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실제 투표율 상승을 이끌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할 때, 내년 대선에서 2030세대는 투표율에서 역대 최고치는 물론 5060세대의 투표율을 처음으로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선거관심도의 급격한 상승은 탄핵정국 속 촛불집회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밝힌 응답자 중 “대선에 관심이 있다”고 한 비율은 81.9%였지만, “촛불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95.1%가 대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국민 의사와 상관없이 “소수가 정치 좌우” 85%
촛불집회 참여 경험이 없는 응답자 중 “대선에 매우 관심이 높다”는 답변은 59.2%였지만, 참여 경험이 있는 응답자에선 무려 82.1%에 달했다. 대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가 촛불집회 참여 여부와 강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불과 두 달 사이 연인원 700만명이 넘는 광범위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또 시민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질서 있는 탄핵국면을 주도했다. 여론조사 시행 전인 6차 촛불집회까지 응답자의 30.7%가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2년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지금까지 평생 동안 정치 시위에 참여한 적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어본 조사에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12.1%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이번 촛불집회의 참여도가 얼마나 컸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광범위한 촛불집회가 가능했던 이유는, 우선 ‘최순실 게이트’가 좌우이념을 떠나 국민 다수를 자괴감과 충격에 빠뜨린 유례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최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보도한 언론에서도 진보ㆍ보수 간 논조 차이가 사라져 하나된 분노를 표출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광범위한 참여와 공감은 자칫 폭력시위로 변질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평화시위 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시민들의 상실감에 위안을 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은 그만큼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시민의 정치참여 역량은 강화하는 데 반해 시민들의 의사와 요구를 정치가 제도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정치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우리나라에선 다수 국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수의 사람이 정치와 정부를 좌우한다”고 밝힌 응답자는 85.1%로 여전히 높았다. 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부가 하는 일에 말할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는 응답은 40.6%에 그쳤다. 동일한 답변을 한 20대와 30대는 각각 21.3%, 36.3%에 머무는 등 2030세대를 중심으로 시민역량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이 촛불민심의 정치에 대한 신뢰를 부분적으로 회복시켰고, 촛불집회와 같은 거리의 정치보다 투표와 같은 전통적인 정치 참여에 의존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은 촛불민심의 절반의 승리다. 이번 촛불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되살리는 계기가 될지, 2008년 촛불처럼 폭력과 냉소로 귀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이후 19대 대선이 그 결과를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촛불민심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내년 대선에서 유례 없는 2040세대의 투표참여를 예고하고 있고, 단순한 대통령 심판이나 정권교체가 아닌 불신 받는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공은 다시 정치권으로 넘어온 셈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 10일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유선 176명, 무선 82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유ㆍ무선 전화 임의걸기(RDD)를 통한 전화면접조사 방법을 썼으며 응답률은 14.4%로 집계됐다. 2016년 11월 행정자치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 기준을 적용해 지역ㆍ성ㆍ연령별 가중치를 부여했다.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정한울 객원기자(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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