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미를 위해 자기 새끼를 물어 죽이는 숫사자를 보며 분노한다. 추위를 모면하려 붙어 선 펭귄들이 바깥의 녀석들을 안으로 밀어 넣어 주는 것을 보며 흐뭇해한다. 동물의 세계는 늘 우리를 열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지만, 결국 확인하게 되는 건 인간의 어떠함뿐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소설가, 미술이론가였던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의 ‘동물시집’(난다)이 번역 출간됐다. 거북이, 말, 뱀, 고양이, 돌고래, 사자, 토끼, 낙타 등 다양한 동물들에 대한 4~6행짜리 짧은 시 모음집이다. 1911년 3월 발간 당시 책에 삽입됐던 라울 뒤피의 판화 30점도 그대로 실었다. 번역은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맡았다.
초현실주의, 입체파, 다다이즘 등 20세기 초반 유럽에 불어 닥친 전복적인 분위기와 그 앞줄에 섰던 아폴리네르를 떠올리면 이번 시집은 쉽고 소박하다. “벼룩도, 친구도, 애인마저도/ 우릴 사랑하는 것들은 어찌 그리 잔인한가!/ 우리네 모든 피는 그들을 위해 흐르지./ 사랑 받는다는 인간은 불행하지.” (‘벼룩’ 전문) 시인은 ‘사랑함’이 아닌 ‘사랑 받음’의 괴로움에 대해 말한다. 어떤 예술가들은 주변인을 숙주로 삼지만, 동시에 저 자신이 세계의 숙주가 된다. 세계가 시인의 피를 어찌나 힘차게 빨았는지, 그는 자신의 피가 숫제 그들을 위해 흐른다고 한탄한다.
잉어에게서 본 것은 죽음이다. “수족관에서도, 연못에서도/ 잉어들아, 너희들은 참 오래도 산다!/ 우울의 물고기, 너희들을/ 죽음이 잊어버린 것인가.”(‘잉어’ 전문) 장수의 상징으로서 각종 축복에 사용되지만, 정작 잉어가 그걸 알면 이를 갈지도 모른다. 죽음의 권리를 빼앗긴 채 길상(吉祥)으로 박제된 것도 서러운 일인데, 심지어 그게 죽음이 저를 잊었기 때문이라니. 재미있는 것은 이 시를 쓸 때 시인의 나이가 많아야 서른이라는 점이다.
역자는 주석에서 “예술의 속성을 가볍게 우의하는 시집이지만 또한 죽음의 시집”이라며 “이 죽음을 통해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고, 농담이 지혜로운 예언이 되고, 시는 또 하나의 깊이를 얻는다”고 썼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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