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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동물詩에 삶의 통찰 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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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동물詩에 삶의 통찰 담았네

입력
2016.12.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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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의 판화 ‘부엉이’. 1911년 발표한 기욤 아폴리네르의 ‘동물시집’에 실렸던 그림이 국내 출간본에 그대로 실렸다. 난다 제공
라울 뒤피의 판화 ‘부엉이’. 1911년 발표한 기욤 아폴리네르의 ‘동물시집’에 실렸던 그림이 국내 출간본에 그대로 실렸다. 난다 제공

교미를 위해 자기 새끼를 물어 죽이는 숫사자를 보며 분노한다. 추위를 모면하려 붙어 선 펭귄들이 바깥의 녀석들을 안으로 밀어 넣어 주는 것을 보며 흐뭇해한다. 동물의 세계는 늘 우리를 열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지만, 결국 확인하게 되는 건 인간의 어떠함뿐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소설가, 미술이론가였던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의 ‘동물시집’(난다)이 번역 출간됐다. 거북이, 말, 뱀, 고양이, 돌고래, 사자, 토끼, 낙타 등 다양한 동물들에 대한 4~6행짜리 짧은 시 모음집이다. 1911년 3월 발간 당시 책에 삽입됐던 라울 뒤피의 판화 30점도 그대로 실었다. 번역은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맡았다.

초현실주의, 입체파, 다다이즘 등 20세기 초반 유럽에 불어 닥친 전복적인 분위기와 그 앞줄에 섰던 아폴리네르를 떠올리면 이번 시집은 쉽고 소박하다. “벼룩도, 친구도, 애인마저도/ 우릴 사랑하는 것들은 어찌 그리 잔인한가!/ 우리네 모든 피는 그들을 위해 흐르지./ 사랑 받는다는 인간은 불행하지.” (‘벼룩’ 전문) 시인은 ‘사랑함’이 아닌 ‘사랑 받음’의 괴로움에 대해 말한다. 어떤 예술가들은 주변인을 숙주로 삼지만, 동시에 저 자신이 세계의 숙주가 된다. 세계가 시인의 피를 어찌나 힘차게 빨았는지, 그는 자신의 피가 숫제 그들을 위해 흐른다고 한탄한다.

잉어에게서 본 것은 죽음이다. “수족관에서도, 연못에서도/ 잉어들아, 너희들은 참 오래도 산다!/ 우울의 물고기, 너희들을/ 죽음이 잊어버린 것인가.”(‘잉어’ 전문) 장수의 상징으로서 각종 축복에 사용되지만, 정작 잉어가 그걸 알면 이를 갈지도 모른다. 죽음의 권리를 빼앗긴 채 길상(吉祥)으로 박제된 것도 서러운 일인데, 심지어 그게 죽음이 저를 잊었기 때문이라니. 재미있는 것은 이 시를 쓸 때 시인의 나이가 많아야 서른이라는 점이다.

역자는 주석에서 “예술의 속성을 가볍게 우의하는 시집이지만 또한 죽음의 시집”이라며 “이 죽음을 통해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고, 농담이 지혜로운 예언이 되고, 시는 또 하나의 깊이를 얻는다”고 썼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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