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과일을 따다 추락해 척추 손상을 입고 요양하던 중 자살한 경비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장순욱)는 장모씨가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장씨 남편은 지난 2014년 10월 대구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중 작업 지시를 받고 과일을 따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척추 손상을 입었다. 요양승인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던 그는 이듬해인 2015년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법원은 고인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발생한 우울증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해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사고 뒤 항문 등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왔던 장씨 남편은 의사로부터 “항문 기능이 거의 상실됐고 기계를 삽입해 생활해야 하며 통증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가족과 간호사에게 극심한 우울감을 호소해왔다. 자살 무렵에는 ‘통증이 심해 고통스럽다. 죽고 싶다’는 말도 여러 차례 했다. 관리사무소 책임자와 사회에 대한 분노,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좌절감도 가족과 간호사에 의해 관찰됐다. 본인의 거부로 우울증 치료는 따로 받지 않았다.
재판부는 “척추 손상으로 생긴 극심한 통증과 대소변 장애, 증상이 영구 장애로 남을 것에 대한 신병 비관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추락사고와 자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근로자의 자살로 인한 사망은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근로자가 그 업무상 재해 때문에 생긴 우울증 등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해 사망에 이른 경우는 예외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