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에도 정치적 각성 필요”
청ㆍ장년층 ‘시민평의회’ 시국 토론
교수들도 시민 상대로 거리 강의
17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 스페이스노아 커넥트홀에서는 시민 70여명의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시민평의회’란 이름 아래 이들은 5명씩 조를 꾸려 20분씩 주제별로 의견을 모은 뒤 전체 참석자가 각 주제에 발언하는 식으로 3시간 가까이 논의를 이어 갔다. 청년세대가 대부분이었지만 평의회 취지에 공감한 장년층도 일부 참여하면서 얘깃거리는 훨씬 풍부해졌다. 대학생 정지은(23ㆍ여)씨는 “촛불집회의 목소리가 동력을 잃지 않도록 광장에 나와 소통하는 시민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촛불민심이 탄핵안 가결 이후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방향성을 놓고 대안을 모색하는 ‘광장 정치’로 옮겨 가고 있다. 시민들은 단순히 부도덕한 정권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촛불집회를 한국사회 전반의 혁신을 이뤄내기 위한 호기로 여기는 분위기다.
광장 정치는 무능한 정권에서 파생된 사회 문제점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했다. 만연한 권위주의 폐해부터 일자리 불균형, 교육과 현실의 괴리 등 한국을 ‘헬조선’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성토가 쏟아졌다. 직장인 김명철(36)씨는 “괜찮은 고교를 나왔으나 유명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괴로워하다 나라를 떠날 마음을 먹기도 했다”며 “특정한 신분과 상징으로 평생 개인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강요하는 사회구조가 최순실 게이트를 불러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실 비판의식을 공유한 참가자들은 탄핵 뒤에도 시민의 정치적 각성과 개혁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경진(32ㆍ여)씨는 “정치가 문제라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정치 혐오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며 촛불의 다음 과제로 정치제도와 정치권의 변화를 주문했다. 김헌동(61)씨는 “도덕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퇴출되지 않고 수십년 동안 사회 각 분야에 리더 노릇을 하면서 부조리가 일상화했다”며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진 리더 그룹이 자리잡을 수 있게 시민사회가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각 청계천 인근에는 거리 강의실이 차려졌다. 전국교수연구자 비상시국회의 주최로 전문가 그룹인 교수들과 시민들은 의견을 주고 받으며 행동하는 시민의 역할을 되새겼다. 농민 이동욱(57)씨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일반 시민들이 한 자리에서 상대 의견에 경청하며 결론을 끌어 내는 참여 정치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인용해도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 될 것”이라며 “주권자들의 투쟁이 1987년 헌법을 쟁취했다는 기억을 간직하고 여러분이 광장에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화답했다.
모든 세대와 계층을 아우른 광장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면서 촛불의 잠재력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거악을 우리 스스로 물리칠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이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2차 논의로 확대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 96%가 박 대통령 퇴진 구호 아래 뭉쳤던 이전과 달리 탄핵안 가결 이후에는 수많은 의제가 분출된 탓에 광장의 조율 능력에 따라 제도 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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