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77만(주최측 추산) 민심이 또 다시 촛불을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촛불 민심은 헌법재판소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향했다.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위로했고, ‘포스트 박근혜’ 구상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17일 박근혜 퇴진 8차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은 전날 ‘탄핵 이유가 없다’는 답변서를 제출한 박 대통령과 박 대통령 대리인 역할을 넓혀가는 황 권한대행을 향한 성난 민심으로 가득 찼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시작된 집회에서 주최측인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국민들로부터 이미 즉각 퇴진 선고와 탄핵 심판을 받은 박근혜는 변호인을 통해 헌재에 ‘탄핵 이유가 없다’는 후안무치한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퇴진행동은 그러면서 “지금 대통령 행세를 하며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를 강행하는 황 권한대행도 즉각 사퇴하고, 헌재는 한치 머뭇거림 없이 박 대통령을 신속히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집회가 끝나고 시민들은 청와대와 헌재, 삼청동 총리공관를 향해 세 갈래로 행진하며 압박에 나섰다. 광화문광장-종각역-탑골공원을 거쳐 헌재 100m지점인 지하철3호선 안국역 4번출구까지 간 행진 대열에서는 “헌재는 판결을 서둘러라”는 구호가 연신 흘러 나왔다. 행진에 동참한 작가 안모(32)씨는 “상식적으로 당연히 박 대통령이 탄핵돼야 하는 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는 게 드러난 이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삼청로를 따라 총리공관 100m 지점까지 진출한 또 다른 행렬은 “황교안을 구속하라” “세월호 진실을 은폐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외쳤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정성욱씨는 “억울하게 죽은 300여명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박근혜와 황교안 등 모든 무리들이 다 내려와서 국민들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진출한 행렬도 청와대를 향해 “박근혜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본집회 전에는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의 의미를 되새기거나 탄핵 이후를 고민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전국 대학교수 단체들 모임인 전국교수연구자비상시국회의(시국회의)는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세 번째 ‘거리시국강연회’를 열고, ‘향후 한국사회의 전망’을 주제로 의견을 교환했다. 사회를 맡은 송주명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우리 과제는 박근혜와 공범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리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때까지 이 광장에서 함께 싸워나가자”고 제안했다. 같은 시간 퇴진행동측이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한 ‘재벌구속 촉구 결의대회’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재벌도 공범이라며 특검 수사에서 이 부분도 철저하게 밝혀낼 것을 촉구했다.
최근 세월호 참사 당일 국정공백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서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행사도 있었다. 낮 12시쯤 광화문광장 한복판에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바닥에 깔렸다. 구명조끼에는 노란 리본이 새겨졌고, 노란 분필로 희생자의 이름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구명조끼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하거나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적셨다. 초등생 딸과 함께 광장을 찾았다는 이정미(46)씨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세월호 참사가 컨트롤타워의 부재, 대통령과 정권의 무능력 때문에 빚은 비극이란 걸 깨달았다”며 “해가 갈수록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잊고 있었던 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퇴진행동측은 “크리스마스 전날일 24일과 올해 마지막날인 31일에도 다시 모이자”며 오후 9시를 넘겨 집회를 마무리 했다.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 등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극우단체들도 이날 광화문광장 주변에서 집회와 행진을 이어갔다. 이들은 청와대로 행진하면서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빨간 장미꽃을 놓는 행사도 가졌다.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100만 보수집회’를 독려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엄마부대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주최한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 “지금 좌파들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박 대통령을 버렸다고 선동하는데 과연 그게 맞느냐”며 “좌파들이 벼르고 별러 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이날 228개 중대 1만 8,200여명을 배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촛불집회와 보수단체집회 참가자 간 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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