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비대위 구성서 영향력 자신
비주류에 반격 빌미 안주려는 듯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친박계 당 지도부가 16일 정우택 신임 원내대표 선출이라는 안전판이 마련되자 일괄 사퇴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당 쇄신을 위해 사퇴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요구를 외면하며 버티기로 일관해왔음에도 뒤늦게 “변화를 바라는 280만 당원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안면을 바꿨다.
이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면서 “비상한 시국에 정우택 원내대표 체제가 새롭게 출범한 만큼 ‘정우택 대표 체제’로 바꿔서 당이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가길 바라는 염원에서 뜻을 모았다”고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당초 친박계 당 지도부는 오는 21일 총사퇴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비주류 후보가 원내대표로 당선되는 경우를 대비한 선택이었다. 원내사령탑이 비주류로 넘어갈 경우 친박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주도하며 친박계 비대위원장에게 당권을 남겨준다는 계획이었다. 비대위 체제 승인을 위해 친박계가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전국위원회를 20일쯤 소집할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패색이 짙었던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 정우택 의원이 당선되자 이 대표는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친 점 용서를 구한다”며 사퇴로 급선회했다. 비주류에게 친박 지도부가 버틴다는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까지 맡게 되면 어차피 향후 비대위 구성 논의 등에서 친박계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평가다. 이 대표는 비대위 구성을 위한 전국위원회 소집, 전당대회 개최에 대해서도 “일단 원점”이라며 “조급하게 하는 것보다 충분한 의견을 모으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20대 총선 참패 이후 8ㆍ9 전당대회를 통해 새누리당의 선장이 됐으나 4개월 만에 퇴진하게 됐다. 당 사무처 출신으로 대표까지 올랐던 이 대표는 당 윤리위원회 무력화 시도 등으로 인해 당직자 후배들이 대표실에서 농성을 하고 10년 만의 당무거부를 결의하는 등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당 지도부가 공언해온 ‘친박계 2선 후퇴’에 대한 질문에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으며, 윤리위원 꼼수 인선에 대해서도 “지적의 상당한 부분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넘어갔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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