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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깜박

입력
2016.12.1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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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고양이가 길모퉁이를 돌아 저쪽으로 사라진다. 아이는 왠지 그 고양이에 이끌려 달려간다. 그 순간 오늘 해야 할 숙제도, 시시콜콜 간섭하는 엄마도 ‘깜박’ 잊어버렸다. 오로지 하얀 고양이에게 홀려서 길모퉁이를 돈다. “니야옹―/니야아옹―” 저만치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여전히 유혹한다. 아니다. 어느 순간 아이가 고양이로 몸을 바꿔 ‘니야아옹’ 소리를 내며 훌쩍 다른 세상으로 건너간다.

하얀 고양이를 따라 길모퉁이를 돌아 본 적이 언젯적이었나, 나는 생각나지 않는다. 매일매일 한 달 수입과 지출을 생각하며 ‘숙제’에 허덕이고, 연로하셔서 귀도 잘 안 들리는 ‘엄마’는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내셨을지 마음이 무겁다. 길모퉁이에 신비한 눈빛으로 서 있다가 휙 돌아서는 하얀 고양이를 보더라도 나는 멍하니 멈춰서서 바라볼 뿐, 유혹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나를 따라와 봐, 고양이의 속삭임에도 거기에 뭐가 있겠어, 기껏해야 또 다른 숙제가 있겠지, 하고 지레짐작할 것이다.

차영미 시인의 동시 ‘깜박’은 아이의 호기심과 숙제와 엄마로 상징되는 억압이 야기하는 일탈 욕구를 그렸다. ‘나’를 잊은 질주이지만 잊어버린 ‘나’는 숙제와 엄마가 규정하는 ‘나’이고, 이를 더 밀고 나간다면 ‘진짜 나’를 찾는 모험이 시작될 것이다. 여기서 어른의 관점으로 ‘진짜 나’가 어디 따로 있어, 하고 비웃지 말고 시인의 감성으로 풀쩍 뛰어 고양이로 변신해 달려가 봤으면 좋겠다.

탐미주의 작가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고양이는 불길함과 공포와 죄악을 매개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고양이의 자태와 습성, 생태는 작가들의 상상력을 다양하게 자극한다. 우리 동시에서는 요즘 고양이를 주로 활달하고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로 주목한다. ‘고양이와 통한 날’(이안), ‘고양이가 나 대신’(이상교), ‘고양이 통역사’(김이삭)처럼 제목에까지 고양이를 올린 좋은 동시집도 있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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