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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

입력
2016.12.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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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2.16

청교도혁명으로 국왕을 죽이고 영국을 공화국가로 만든 올리버 크롬웰이 1653년 12월 16일 호국경에 취임했다.
청교도혁명으로 국왕을 죽이고 영국을 공화국가로 만든 올리버 크롬웰이 1653년 12월 16일 호국경에 취임했다.

영국 왕정을 폐한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이 1653년 12월 16일 자신의 통치장전(Instrument of Government)에 따라 호국경(Lord Protector)에 취임했다. 49년 찰스 1세를 처형하고 귀족원을 폐지함으로써 영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공화국을 수립한 그는 의회마저 해산시킨 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독재자로서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다 집권 5년 만에 병사했다. 그는 새로 들어선 찰스 2세 왕정 하에서 부관참시 당했다.

영국 내전이라고도 불리는 청교도혁명은 1642년 찰스 1세의 전쟁세 부과에 반발한 의회파 반란으로 시작됐다. 잉글랜드 헌팅던(Huntingdon)의 귀족 지주 집안에서 성장해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한 법률가 크롬웰의 당시 직업은 하원 의원이었다. 그는 곧장 사비를 들여 기병대를 조직했고, 청교도적 금욕주의와 규율에 따라 훈련시킨 기병대로 왕당파 군대와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며 명성을 높였다. 45년 무렵 그는 철기대(Ironsides)라 불리던 자신의 기병대를 친위부대 삼아 의회파 군대 전체를 지휘하는 군부 지도자가 됐고, 이듬해 말 찰스 1세의 거점 옥스퍼드를 점령했다.

의회파의 내분이 시작됐다. 왕의 권위는 살려주자는 장로파와 국왕 폐위를 주장하는 독립파. 크롬웰은 독립파였다. 내분 와중에 탈주한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를 기반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장로파를 축출하고 권력을 쥔 크롬웰 군대에 패배해 49년 1월 처형 당했다. 스코틀랜드 왕당파에 의해 새 국왕에 옹립된 아들 찰스 2세 역시 1651년 10월 우스터(Worcester) 전투에서 패배, 프랑스로 도피함으로써 내전은 끝났고, 왕정도 사실상 끝이 났다.

크롬웰의 공화국 독재는 잉글랜드 중심의 영국 정치 안정과 중상주의 식민지 개척의 기틀을 다졌지만, 야만적인 아일랜드 정벌과 종교ㆍ정치적 억압으로 공화정에 대한 영국인들의 인상에 치명적인 인상을 남겼다. 그는 극장 공연과 스포츠, 춤을 금지시켰고, 성서주의에 입각해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했다.

그의 사후 호국경 지위를 계승한 장남 리처드 크롬웰은 이년 뒤 장로파에 의해 왕정이 복고되면서 귀국한 찰스 2세에 의해 처형 당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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