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은 꼭 필요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선의 치료로 사망률이 30%라고 할 때, 새로운 치료로 이를 20%로 낮출 수 있으면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보게 되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기까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대상자들의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 희생을 최소로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1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권순억 서울아산병원 임상연구보호센터 소장(신경과 교수)을 만났다. 임상연구보호센터는 임상연구 윤리성 확보, 대상자 권익 및 안전 보호를 위해 설립된 곳.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대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험에 참여했는지, 임상시험 내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는지 등을 점검한다.
임상시험 대상자 보호의 중요성은 한미약품 폐암치료제 올리타정 부작용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부각되고 있다. 아울러 국내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2011년 503건, 2012년 670건, 지난해 675건 등 증가 추세여서 임상시험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권 교수는 “환자 안전에 관한 모니터링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참여자들도 생기는 것이고 결국 좋은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선(善)순환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 소장은 한미약품 사태 후속조치들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컨대 사망 등 중대 이상반응이 있을 때 임상시험을 중단하는 것을 의무화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말기 암 환자인 상태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이들은 시한부인 경우가 많아서 임상시험과 관련 없이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발의된 법은 항암제 임상시험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과 같아요. 물론 사망과 약물과의 관련성이 밝혀졌을 땐 다른 이야기지만요.”
그는 법을 만드는 일보다 규정대로 잘 지켜지는지 관리 감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소장은 “임상시험과 관련된 법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며 “보고 누락 등 왜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지를 따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임상시험 비용은 경제규모가 비슷한 호주의 절반도 안됩니다.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회피하면 선진화할 수 없어요.”
다른 병원에서는 병원 내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에서 대상자 보호 기능을 병행하고 있지만, 아산병원은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관리 감독하기 위해 2012년 2월부터 임상연구보호센터를 따로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다. 2013년과 올해 임상연구 분야 인증평가의 세계적 권위기관인 미국임상연구피험자보호인증협회(AAHRPP)로부터 전면인증을 획득했고, 올해 5월 병원으로서는 처음 임상시험 종사자 교육기관에 지정되기도 했다. 권 소장은 “정부 정책이나 법안이 만들어질 때 제약사 의견만 반영되면 환자들을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라며 “같은 분야의 전문가 모임을 꾸려 정부 정책이나 법안 마련의 파트너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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