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지배하면 미래도 지배
박근혜정부가 ‘국정’ 만든 이유
현대사에서 친일파 존재 지우려
1948년 건국 우기며 억지 부려
1960년, 70년대 발전 세계적 현상
박정희 신화는 왜곡된 부분 많아
우리 역사에 혁명적 정화 사례없어
4ㆍ19 6월항쟁 뒤 퇴락 되새겨야
토요일 오후 가족이 함께 광화문광장을 찾는 모습이 보기 좋다. 부모들은 역사의 현장을 아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역사 국정교과서 파문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역사 교육이란 무엇인지 부모로서 깊이 생각한다. 암기하고 문제만 풀었던 나에게 과연 올바른 역사인식이라는 것이 있을까.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사를 더 이상 속지 않고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에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73) 선생님을 찾았다.
-사면초가인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국정교과서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요.
“조선왕조 후기 노론이 집권하면서 300년 동안 인물은 바뀌었지만 세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일제로부터 72명이 작위를 받았는데 대부분 노론 출신이며 독립운동은커녕 치부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일본이 남겨놓은 재산을 가로채고, 언론과 정치권력까지 장악했습니다. 유학 보내 박사학위 받은 자식들이 대학의 요직을 차지하고 검사, 판사들은 하수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언론과 방송이 나서서 여론을 조작하고 비판세력은 공권력을 악용해 탄압하거나 제소해 법원이 자기 편을 들도록 했습니다. 결국 기득권 진영의 카르텔이 형성된 거죠.
재벌 청문회를 보면 할아버지들이 했던 짓을 손자들이 똑같이 하잖아요. 1948년 수립된 이승만 정부를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억지 부리는 건 친일파라는 존재를 우리 현대사에서 지우려는 책동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전의 친일파와 건국 이후의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지요.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하고, 미래를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일본이 우리를 강점하고 가장 먼저 우리 고대사를 전부 수거해 불태워 버린 뒤 총독이 직접 책임지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선사를 바꿔 버린 겁니다. 박근혜 정부가 새로 역사 국정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시도와 무엇이 다를까요.”
결국 역사 국정교과서는 현재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미래도 계속 지배하겠다는 매우 적극적인 재집권 의지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피로감을 느낀 나도 잘못된 역사인식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함께 깨닫고 반성한다.
-이 지경이 돼도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향수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박정희 신화는 대단히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 1960~70년대 경제발전은 세계적인 현상이었어요. 동북아만 하더라도 일본, 대만, 싱가포르, 우리나라까지 연 7~8% 경제성장을 했습니다. 서독도 비슷합니다. 우리 국민은 교육열이 참 대단해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대거 배출되죠. 역시 박 전 대통령과는 무관합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8개월 만에 쿠데타로 무너진 장면 정권이 수립한 것을 거의 그대로 한 겁니다. 일본이 4년 정도 지배한 동남아 국가들은 보통 5억 달러 이상 배상 받았는데 35년 지배를 받은 우리는 고작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 공공차관 1억 달러까지 모두 6억 달러를 경제개발에 쓸 수 있었습니다.
또 리영희 선생은 베트남에서 죽은 우리 청년 5,000명의 피를 팔아 경제를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저곡가 정책으로 농민들을 희생시키면서 경제 발전을 이룬 겁니다. 소련의 남하를 봉쇄하려는 정책 때문에 미국도 꽤 투자를 했는데 그런 복합적인 요인을 살피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건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이지요.”
허상일 뿐인 죽은 아버지의 후광효과가 실제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우리 국민들의 역사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다음 대선이 걱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득권 진영은 자신들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를 모면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현혹할 텐데 말이다.
-이번에는 대통령 바꾸기에 머물지 않고 친일 잔재가 계속 이어져온 적폐까지 청산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참 존경하는 신채호 선생이 가장 개탄한 것이 우리가 혁명적인 정화가 없는 민족이라는 겁니다. 창업도, 개국도, 반란도, 반정도 우리 역사에 모두 있었는데 혁명적인 정화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임계점에 도달했다가 더 이상 못 나갔어요. 1894년 동학혁명 때 남접과 북접이 단결해 전주에 더 머무르지 말고 서울로 진격했어야 하는데 실기하죠.
저는 3ㆍ1운동을 3ㆍ1혁명이라고 하는데 당시 인구 1,800만명 중 10분의 1이 넘는 220만명이 항일 자주독립 민주공화라는 가치를 위해 궐기했잖아요. 물론 일제의 폭압에 잦아들기는 했지만 4,000년 역사상 지역 종교 계층 신분 성별을 뛰어넘어 이렇게 일체가 된 적이 없었거든요. 결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됐지만 더 이상 진척이 안 된 거죠.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고, 4ㆍ19혁명 때도 내무부장관이 경찰에게 “총은 쏘라고 주는 거다”라고 했습니다. 막강한 군부 배경에는 심지어 정치 깡패까지 있었죠. 그러나 시민, 학생들이 맨손으로 궐기해서 이승만 정권을 타도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일제와 독재의 잔재를 뿌리 뽑지 못하고 정권을 민주당에 넘겨줘 버렸고, 6월 항쟁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광화문, 민주광장의 열기는 식고 다시 개인적으로 울분을 삼켜야 하는 시절로 돌아가고 말 것인가. 새로운 역사를 위해 우리 국민은 어떤 역사를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 ‘괜찮다’는 ‘관계하지 아니하다’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조선 중ㆍ후기 사색당파에 관계했다가 본인만이 아니라 삼족이 멸하고, 일제강점기에 의병이나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본인은 물론 3, 4대까지 빈곤에 시달리지만 친일파들은 대통령도 되고, 국무총리도 되고, 언론사 사주도 되지 않았습니까. 재벌 2, 3세까지 권력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피해의식에 젖어 버린 겁니다.
군사정권 때도 그랬지요. ‘나서지 마라, 관계 하지 마라, 너 아니라도 할 사람 많다’라는 태도가 특히 학부모들한테는 은연중에 굳어버린 거죠. 결국 정의감을 잃고 분노할 줄 모르는 국민이 된 겁니다. 지금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고 임계점까지 가고 있는데 수구세력은 온갖 공작을 준비할 겁니다. 예전 같으면 북한에 연락해서 판문점, 휴전선에서 총질하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북한에서 안 들어 줄 거예요, 하도 이쪽에 당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수구 언론이 생업이 바쁘고, 세계가 빠르게 변하고, 아이들 일자리가 없다는 둥 분위기를 잡을 겁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쫓겨났을 때, 18년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었을 때 수만 명이 눈물을 흘렸던 동정심 많은 국민성과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약점을 파고들면 ‘그래 맞아 우리가 할 만큼 했어’라고 물러날지도 모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의(義)를 파자(破字) 하면 ‘자기 양은 자기 손으로 창을 들고 지키는 게 정의’라는 말입니다. 최근 100년 동안 옳은 걸 주장하고 그릇된 건 비판하는, 제가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덕목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소수 비판적인 언론과 지식인 외에는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잖아요. 권세에 추종하고 외세에 굴종하고 독재에 기생하다 보니 우리나라가 이 지경까지 온 겁니다. 비록 부정한 권력의 압제 탓이기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4ㆍ19와 6월 항쟁 이후의 퇴락을 면치 못할 겁니다.”
‘최소한 친일파의 후손들이 나서서 그러면 안 되죠’라고 엄숙하게 꾸짖는 선생님의 표정이 계속 떠오르는 건, 애국자는 곤궁하고 매국노는 부유한 어처구니없는 우리 현대사에 나도 포함되기 때문이리라. ‘괜히 나섰다가 피해보면 어쩌지’, ‘내가 빠진다고 큰 일 나겠어’라는 생각은 바로 친일파, 독재자들이 심어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결국 그들 편에 선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아베 노부유키 전 조선 총독의 말이 기억난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와 같은 삶을 살 것이다.” 내 안에 남아 있는 식민교육의 잔재는 뭘까. 토요일 오후 학원에 가는 아이에게 너의 미래를 위해서는 광화문광장에 가야 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닐까. 민주진영의 분열을 걱정하기보다 자기가 선호하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이웃과 갈등하는 모습이 아닐까.
우리 부모들이 2016년 시민혁명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자기 새끼만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없으며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직하며 정당하게 비판하는 그런 아이들이 출세하는 사회를 만들어 모든 아이들이 잘 살 수 있어야 내 아이도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행복한공부연구소장
▦김삼웅 선생은
-1943년 전남 완도 출생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
-현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 ‘백범 김구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몽양 여운형 평전’ ‘김대중 평전’ ‘노무현 평전’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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