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친러 노골화는 中 뒷통수”
러시아 관계 감안해 美 비판 조절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잇따른 ‘반중친러’ 행보에 좌불안석이다.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를 건드리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뒤흔든 데 이어 외교수장에 친러 인사를 지명함으로써 중러 밀월관계에도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감안해 대미 비판의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4일 사설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데 대해 “미국과 러시아 양국관계가 어느 정도 증진되더라도 중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십 협력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중러는 국경이나 이데올로기 분쟁이 없고 러시아가 힘들 때도 러시아를 위하는 중국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아무리 친러 인사를 중용하더라도 중러관계를 약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환구시보는 또 “틸러슨이 국무장관이 된다면 러시아에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고 미러 간에도 긴장을 감소시키는 건 필요할 수 있다”면서 “다만 양국 정상이 한 때 악수를 하며 미소를 짓더라도 돌아서면 현안을 두고 서로 비난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미러관계가 형식적으로는 개선되겠지만 실질적인 신뢰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어깃장을 놓으면서도 친러 외교수장의 지명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도 일부 인정한 것이다.
중국 측의 어정쩡한 행보는 다분히 근래 들어 황금기를 맞고 있는 중러관계를 의식한 측면이 커 보인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주한미군 배치와 북핵 문제 해법 등에서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는 러시아를 가급적 자극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미국과 신형 대국관계를 구축하려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협력이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중국이 트럼프 당선인에겐 악재일 수 있는 러시아의 미 대선 관여 의혹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의 전화를 시작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도마에 올린 뒤 다소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반발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행보다.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공세의 불똥이 러시아로 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는 셈이다.
대신 러시아와 무관한 분야에선 대미 무역보복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지만 그 와중에도 트럼프 당선인 측의 기류를 탐색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미국 자동차회사의 반독점 규정 위반을 거론했고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 커피체인점 스타벅스의 시장지배력 약화를 경고했다. 그러는 사이 외교담당 실무사령탑인 양제츠(楊潔篪) 국무위원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등을 만나는 등 물밑 탐색을 벌였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당선인이 대만 문제에 이어 친러 행보를 노골화함으로써 중국은 연이어 외교무대에서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며 “중국 지도부 내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전 충돌도 일정 부분 감수하자는 의견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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