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지엔 ‘훈련서 소모’ 허위기재
태풍 등 영향 예비군 훈련 못해
1642개서 화약 분리한 후 버려
낙엽 제거 후 복귀하던 병사들
“삽으로 땅 치다 폭발” 진술 확보
2. 탄약 등 이월하면 불이익 받아
‘업무능력 미비’ 진급 등에 영향
부상 병사 중 18명은 부대 복귀
13일 20여명의 부상자를 낸 울산 군부대 폭발사고는 소진해야 할 훈련용 폭음통을 무단 폐기한 것이 원인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고 부대 대대장이 무단폐기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 국가 예산낭비는 물론 탄약ㆍ화약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다.
군은 14일 울산시청에서 브리핑을 갖고 “부대에 남은 훈련용 폭음통 1,642개의 화약을 대대장의 폐기 지시를 받은 소대장 등이 병사들을 동원해 지난 1일 1개당 3g씩 분리해 예비군 시가전 훈련장 조립식 건물 주변 콘크리트 바닥에 발로 넓게 문질러 버렸다”고 밝혔다. 군은 “이 사실을 모르는 병사들이 부대 울타리 낙엽제거 작업 후 부대로 복귀하면서 화약을 밟았거나, 지니고 있던 공병삽 갈고리 등을 땅에 치는 과정에서 정전기가 발생해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은 부상한 병사들로부터 “공병삽 등을 땅에 ‘툭툭’ 치면서 조립식 건물 주변 콘크리트 바닥을 지나가던 중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폭발이 발생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이 부대 대대장은 올해 훈련용 폭음통 1,848개를 지급받았으나 200개만 사용하고 연말에 1,642개가 남자 상급부대의 문책을 우려해 “비오는 날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대대장은 “개봉해서 화약만 버리라는 지시는 아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대는 훈련용 폭음통을 무단 폐기하고도 훈련일지에는 훈련을 통해 소모한 것처럼 허위로 기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군은 “지난 1일 대량의 폭음통을 해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한 병사의 진술을 확보하고 탄약관을 집중 추궁해 관련 내용을 자백 받았다”며 “탄약관은 소대장에게, 소대장은 대대장 참모에게 보고해 대대장이 적당하게 소모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군은 이에 따라 이 부대 대대장과 전시작전과장, 소대장 등을 대상으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훈련용 폭음통은 길이 5㎝, 지름 1.5㎝ 크기에 7㎝짜리 도화선이 달린 교보재로, 불을 붙여 던지면 포탄이나 수류탄이 떨어지는 효과음을 낼 수 있어 진지 점령 등 각종 군 훈련에서 사용된다. 폭음통 1개에는 약 3g의 화약이 들어 있으며 1,600여개를 해체한 화약은 약 4.8kg에 달한다. 1개당 가격은 897원이다.
군은 “10발의 폭음통 화약만 폭발해도 발목이 절단 날 수 있는 위력이 있다”며 “취급 부주의로 터지면 손가락이 절단 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선 부대에서는 탄약이나 폭발물 등을 제때 사용하지 않고 모았다가 한꺼번에 처리하는 사례가 적잖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교범에 따르면 폭음통 등 탄약류는 반드시 탄약고에 보관하고 반출 회수시 담당간부가 확인하도록 돼 있다. 예비군부대의 경우 예비군들이 예상했던 인원만큼 모이지 않거나 계획대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많이 남게 된다. 실제 일선 부대에는 연말마다 탄약이 남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 부대도 최근 울산지역에 역대급 피해를 입힌 태풍 ‘차바’와 경주 지진 등으로 예비군 훈련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훈련용 폭음통 재고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탄약이나 폭음통 등을 이듬해로 이월해야 세금 낭비가 없는데 자주 이월하면 업무추진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탄약고 담당자나 상급자가 진급 등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군관계자는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잦았으나 최근에는 보급량의 10% 이상 남으면 상급부대에 보고하고 이월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에는 조립식 모형건물이 폭발 압력에 의해 심하게 구부러져 파손됐고 도로에는 부상 병사들의 모자, 장갑 등 널려 있었다. 한 병사는 “시가지 전투훈련장에 이르러 8명은 사고지점을 통과하고 중간 대열 7명이 사고지점과 인접해 큰 부상을 당했고 후미 16명은 접근 중이었다”며 “백색 섬광과 열기로 중간 7명이 쓰러졌다”고 밝혔다.
이날 사고로 부상 병사는 모두 28명으로 18명은 간단한 약 등을 처방 받고 부대로 복귀했으며 발가락 3개를 절단한 이모(21)병사와 고막이 파열된 병사 4명 등 나머지 10명은 병원 등에서 치료 중이다.
울산=김창배기자 kimc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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