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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입력
2016.12.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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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라면 역시 올해의 ‘무엇’을 뽑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16년 12월 31일에 지는 해와 2017년 1월 1일에 뜨는 해가 다르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굳이 터오는 동을 보며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게 되듯, 12월이라면 역시 한 해를 정리하며 결산을 해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해마다 잊지 않고 꼽는 것은 역시 ‘올해의 문장’이다. 소설을 읽다가 밑줄 친 문장, 시를 읽다가 몇 번이고 되뇌어 본 문장, 기사나 칼럼을 읽다가 곱씹어 보려 모아둔 문장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본다. 색색의 밑줄 사이에 마음에 끝까지 남은 한 줄은 뜻밖에 SNS에서 본 문장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이 문장은 ‘#OO_내_성폭행’이라는 해시태그 아래서, 여성들의 처절한 고발이 이어지던 때 한 트위터 유저가 남긴 것이었다. 다양한 집단에서 어떤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수많은 성폭력이 자행됐고 또 묵인되어왔는지를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안에서 ‘우리’로 서로를 호명하며 피해자들과 연대하기를 선언한 이들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게 바로 “서로의 용기”가 되어줄 것을 약속하는 일이었다. 2015년 봄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로 시작해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이 땅의 여성들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전에도 늘 있었던 일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SNS를 중심으로 더 크게 말하고, 서로에게 말을 걸면서 여성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연결된 동안은 강하다는 사실도 알고 또 믿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당시 10번 출구를 가득 메웠던 포스트잇 앞에서 여성들은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고 외쳤다.

지난 7주간 촛불 집회에 참여하면서 가장 마음 편하게 구호를 외칠 수 있었던 순간은 몇몇 페미니스트 깃발들이 모인 ‘페미존’ 안에 있을 때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용기다, 서로의 용기다”하고 외치며 깨달았다. 이 문장이 올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매 순간 느꼈던 이들과 또 내 안에 오랫동안 남아있으리라는 것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고도 외쳤다. 앞서 산 여성이 싸우지 않았다면 아직도 여성 몫의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을 깨달은 한 해 이기도 했다. 2016년은, 연결될수록 강한 여성들이 서로의 용기가 되어줄 것을 약속하고 또 계속 싸워나갈 것을 다짐한 한 해였다.

그 커다란 광장의, 내가 유일하게 소속되었다고 느끼는 곳에서 구호를 외치며, 나는 아직 오지 않은 2017년의 문장까지 만났다.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 없다.”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2017년이 대통령 선거의 해가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선거의 과정과 결과가 사회의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은 자명하나, 그 변화의 방향이 어디일지, 200만 촛불의 동력이 어디로 향할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단 하나 알고 있는 것은,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결코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성별과 나이로 인해 멸시를 당한 여성들과 성 소수자들의 존재를 지우고 평화 시위가 완성되어서는 안 되며, 국정을 파탄 냈다는 이유로 여성성을 욕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정치를 ‘조개를 줍는 일’이라고 폄하하는 이들과 지치지 않고 싸워야 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 안에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면, 어디에 촛불을 가져다 두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선언할 것인가. 나는 이 깊은 어둠이 새로운 해가 뜨기 전, 가장 마지막 어둠이기를 바라며 내가 가진 한 줄기 빛을 또 다른 여성의 초로 옮겨주고 싶다. 거기서도 말할 것이다.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 없다”고. 그게 바로 2017년, 우리의 문장이어야만 한다고.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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