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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 국무장관 지명에 담긴 트럼프의 세계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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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 국무장관 지명에 담긴 트럼프의 세계전략

입력
2016.12.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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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반러친중’을 선택했던 리처드 닉슨(왼쪽) 전 대통령과 ‘친러반중’ 외교정책을 꾀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냉전시대 ‘반러친중’을 선택했던 리처드 닉슨(왼쪽) 전 대통령과 ‘친러반중’ 외교정책을 꾀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미국 행정부의 세계전략을 ‘역(逆) 닉슨 전략’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방중 이후 채택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하는 대신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친러 성향의 렉스 틸러슨(64)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를 외교 수장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최근 행보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닉슨이 구사했던 ‘중국 카드’전략의 판박이다. 닉슨이 당시 구 소련과의 냉전 구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중국에 접근하고 소련에서 떼어내려 했던 것처럼,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의 최대 라이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겠다는 얘기다. 닉슨 행정부 이후 40여년간 이어진 미국의 ‘친중ㆍ반러’ 정책을 ‘친러ㆍ반중’으로 뒤집겠다는 속셈이기도 하다.

미 의회의 견제에도 불구, 틸러슨이 트럼프 내각의 초대 국무장관에 오른다면 세계정세는 급격한 불확실성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트럼프가 역대 미국 외교정책의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행된다면 우크라이나와 시리아는 물론이고 티베트, 남중국해 등까지 불안정성이 고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무부 정통 외교관료들의 저항이 있겠지만, 틸러슨은 동유럽과 중동에서 러시아와의 전면적인 관계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로부터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권리를 인정하는 한편, 시리아에서도 친러 아사드 정권이 세력을 회복하는 걸 용인할 것으로 보인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세력 확장에 불안감을 드러내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을 설득, 대러 금수조치의 해제도 추진할 수 있다. 가디언이 틸러슨 임명설이 거론되자, “미 대선의 전략적 승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신 미국인들이 중동지역 최대 현안으로 꼽는 이슬람국가(IS) 소탕에서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세력이 위축됐지만 IS는 이라크, 시리아는 물론이고 리비아까지 퍼진 상태에서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하다. 크렘린궁은 틸러슨 국무장관 지명 소식에 13일 곧바로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래의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와 상호관계 발전을 지지하는 인물이다”고 평가했다.

틸러슨은 트럼프 차기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중국과는 초반부터 마찰도 감수하는 강공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경제ㆍ안보 분야 전반에서 파상적인 압박이 이뤄질 수 있다. 미중간 현안으로 급부상한 대만의 지위를 둘러싼 ‘하나의 중국 원칙’과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서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움직임이 남아있는 티베트ㆍ신장 지역 문제도 들고 나올 수 있다.

물론 트럼프 당선인의 대중 강경 발언들은 통상ㆍ외교 등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성격도 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취임식에 대만 대표단을 초청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으나 이듬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한 선례가 있다. 중국이 북핵ㆍ통상 이슈에서 미국 체면을 살려주거나, 트럼프가 대중 협상에서 현실적 장벽을 인정한다면 미중 관계도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당선인이 친러 내각을 구성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13일 공개된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근본적인 이익을 위해 미국과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라며 “언제라도 트럼프 차기 대통령과 회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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