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대통령 탄핵과 함께 언론에 자주 오르는 뉴스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이다. 지난달 16일 첫 의심 신고가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돼 닭과 오리 등 가금류의 살처분(殺處分) 규모가 1,200만 마리에 육박하면서 사상 최대 피해가 우려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AI 관련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살처분’이다. 하지만 살처분은 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아니다. 2002년 국립국어원에서 조사한 신어(新語)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데 ‘병에 걸린 가축 따위를 죽여서 없앰’이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도살과 처분을 한꺼번에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동물 가운데서도 농장동물을 제외하고는 살처분이라는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살처분이라는 단어에 주목한 이유는 아무리 농장에서 식용으로 키우는 동물들이라고 해도 ‘처리하여 치운다’는 처분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해도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식탁 위에 오르기 전까지 그들도 엄연한 생명인데, 병에 걸린 동물은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지므로 물건처럼 처분해도 괜찮다는 통념이 은연중에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반면 사람과 친근한 개나 고양이 등에는 살처분 대신 보통 ‘안락사’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도 대조된다.
살처분이라는 단어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AI와 구제역이 발병돼 대규모 도살을 할 때 사용하는 표현과도 다르다. 미 동식물검역소(APHIS)의 구제역 예방과 관리지침에 보면 근절시키다(stamping out)라는 단어를, 영국 BBC 등에서도 구제역 보도 시 도살하다(slaughter), 죽이다(kill) 등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농장 동물이 인간에게 필요한가 여부를 기준으로 한 인간 중심적 접근은 단어사용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자신이 먹는 동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도살되고 매몰되는 지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AI의 인체 감염 여부와 닭, 달걀 가격 상승에만 촉각을 세우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AI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닭과 오리, 돼지, 소가 어떻게 도살되는지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대부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부는 산 채로 닭이나 돼지를 땅속에 묻는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는 2011년 사상 최악의 구제역 당시 방송에서 돼지를 산 채로 구덩이에 밀어 넣는 장면을 보도한 게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영향이 큰 것 같다. 생매장에 대해 묻자 농림부 관계자는 “당시 도살을 위한 약물이 부족했고 곳곳에서 수만 마리를 한 번에 도축, 매몰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라고 했다.
지금은 가금류의 경우 계사에 이산화탄소 가스 등을 주입해 동물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후 매몰하고, 돼지나 소는 개체마다 약물을 주입해 도살한다. 물론 현장에서 위와 같은 지침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정부의 긴급행동지침에는 적어도 생매장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병에 걸렸거나 질병 확산을 예방한다는 목적 아래 도살된 동물들의 목숨은 하찮다거나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사육하는 동물들에 대해 식탁 위로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이번 AI사태로 다시금 느끼게 된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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