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동갑내기 배우 문근영ㆍ박정민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막이 올랐다. 국립극장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내년 1월 15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작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름다운 대사와 극적 효과로 셰익스피어의 4대 희ㆍ비극보다 대중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수백년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숱하게 변용돼 왔지만 2010년 ‘클로저’ 이후 6년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문근영과 영화 ‘동주’로 이름을 알린 박정민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며 국내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내용은 원작을 따랐다. 무대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베로나. 몬테규 가문의 후계자 로미오와 캐플릿 가문의 외동딸 줄리엣은 오랫동안 갈등했던 두 집안의 운명을 거스르고 사랑에 빠진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 티볼트를 죽인 죄로 시에서 추방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줄리엣은 집안의 명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될 처지에 놓인다.
죽음으로 승화한 두 청춘의 사랑은 원작의 시적인 대사로 무게감을 유지하면서도 양정웅 연출가의 현대적 각색ㆍ연출로 더 경쾌해졌다. “밤아!” “창문아!” “약병아!” 등 사물을 의인화하는 대사 등이 곳곳에서 등장해 고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어색한 대사의 한계를 느끼게 하나 속도감 있고 경쾌한 대사 처리로 관객 몰입도를 높인다. 다만 잦은 키스 장면과 19금 유머는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무대 연출은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공간 활용으로 정평이 난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맡았다.
1막에서는 로미오와 그의 친구들이 재간동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비극의 방아쇠를 당기는 인물 머큐쇼 역은 김호영과 이현균이, 로미오의 사촌 벤볼리오 역은 김성철이 맡았다. 사랑의 조력자 로렌스 신부와 줄리엣 유모 역에는 손병호와 서이숙ㆍ배해선이 캐스팅 됐다. 그들의 연기 내공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더 익숙한 주연 배우들의 빈틈을 메우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괴물신인’이라 불리는 박정민 역시 희로애락을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해 또다른 로미오의 탄생을 예고한다.
문근영의 줄리엣만을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았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시종일관 크게 뜬 눈은 ‘울고 있다’는 것을 먼 곳의 관객에 보이기에 충분할 뿐, 굳은 동작과 일정한 톤의 대사는 스스로 연극 무대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연기경력 18년차 배우답게 2막 로미오와 이별한 뒤 극도의 슬픔에 빠진 줄리엣 연기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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