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체 고통에 경제적 부담도
일상생활 영향 대부분 직장 잃어
장애 신청 거부로 극단적 선택도
2. 복지부 “객관적 측정 어렵다”
통증 과장 등 혜택 악용사례 많아
환자들 “일부 핑계로 엄격한 잣대”
이모(50)씨는 일주일에 3번 남편(51)이 치료받는 날을 ‘뺑뺑이 요일’이라 부른다. 병원에 도착하면 30분 넘게 주차장을 헤매며 휠체어를 탄 남편이 타고 내리기 좋은 공간을 찾아야 한다. 그가 장애인주차장을 두고 이런 수고를 반복하는 이유는 남편이 앓고 있는 희귀병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 법적인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12일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불편하다는 병원 진단서까지 제출해 주차 편의를 봐달라고 해도 정부는 ‘등록장애인이 모두 장애인주차표지를 발급받는 건 아니다’며 거부했다”고 하소연했다.
CRPS는 팔, 다리 등 신체 일부의 신경이 손상돼 극심한 통증이 평생 지속되는 난치병이다. 최근 이 병에 걸린 배우 신동욱씨가 6년 만에 방송에 출연해 그간의 고통을 토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CRPS 환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커터칼로 살을 베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심하면 일주일에 서너 차례 응급실에 실려간다. 통증 때문에 손톱을 깎는 일조차 어려워 하는 이들도 있다. 2014년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만 4,023명에 이른다. 환자단체에서는 실제 환자를 1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분명 중증 장애에 신음하고 있지만 CRPS 환자들은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서 통증에 의해 유발된 지체장애는 장애로 인정하고 있지 않아서다. 보건복지부는 통증은 주관적인 것인데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등을 통해서도 CRPS로 인한 통증 정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객관적 측정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감내하는 신체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은 오로지 환자들의 몫이다. 2008년 음료탱크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 몸 전체에 만성통증이 생긴 김민수(37)씨는 다니던 유통회사까지 그만 두고 8년 째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혼자 걷지도 못해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나 장애인이 아닌 탓에 지원이 전무해 대부분 홀로 시간을 보낸다. 어쩌다 집 밖을 나서도 뒤틀린 자세로 걷는 그를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봐 되도록 외출을 삼간다.
그를 더욱 괴롭히는 것은 한창 젊은 나이에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씨는 “낮은 단계의 장애 등급이라도 받아 부모님 부담을 덜고 싶지만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미용사로 일하다 손을 다친 뒤 CRPS 증세가 생겨 직장을 잃은 김모(당시 37세)씨가 수 차례 장애판정 신청을 거부당한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관련 기관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대한통증학회는 2010년 통증 환자의 장애판정 기준을 만들어 정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악용 소지가 크다”며 이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관계자는 “실제보다 통증이나 장애 정도를 과장해 보험금 등 혜택을 받아간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분배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복지 재원의 특성상 확실한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RPS 환자들은 정부가 장애 판정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제시한다고 항변한다. 이용우 CRPS 환우회장은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이미 통증질환에 따른 장애를 인정하고 있다”며 “선진국들의 기준을 참고하면 얼마든지 부정 수급을 가려낼 수 있는데도 정부는 일부 환자를 핑계로 중증 장애의 고통을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만성통증 질병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통증 정도를 세분화해 점진적으로 장애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종범 아주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1년 이상 진료를 받았거나 휠체어 등 보조기구를 사용한 환자들에 한해서라도 장애등급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은 “통증 전문의를 중심으로 별도의 판정위원회를 만들어 엄격하게 장애 유무를 판별하면 악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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