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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친박이 죽어야 보수가 산다

입력
2016.12.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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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피눈물에 책임 큰 친박계

최순실 일당 국정농단 못 막고 비호

국민의 환멸 부르지 말고 물러나야

새누리당 이정현(왼쪽 두 번째) 대표가 8일 오전 국회 대표실에서 친박 의원들과 탄핵안 표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왼쪽 두 번째) 대표가 8일 오전 국회 대표실에서 친박 의원들과 탄핵안 표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박근혜 피눈물’이 SNS를 달구고 있다. 지난 9일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대통령이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는 어떤 뜻인지 알겠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지면서다. 삶이 무너진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들이나 할 말, 그걸 알고 대통령이 됐어야지, 국민들이 흘린 피눈물은 이미 바다가 됐다 등등, 유명 정치인 일반사람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신랄하고 매섭다.

피눈물의 국어사전 뜻풀이는 ‘몹시 슬프고 분하여 나는 눈물’이다. 박 대통령의 피눈물 발언에는 슬픔보다는 원망과 분함이 넘쳐난다. 참회나 반성의 기색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이제 직무정지로 청와대 관저에서 사실상 유폐 칩거 생활을 하면서 그 원망과 분함을 곱씹고 또 곱씹을 것이다. 귀곡산장급이라는 청와대 관저의 밤은 길기도 길 것이다. 그러나 원망과 분노의 1차 대상을 야당, 언론, 촛불에서 찾는다면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가장 원망해야 할 대상은 본인 자신이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의 진정한 뜻도 이 참에 뼈저리게 배우기 바란다.

다음이 최순실이다. 박 대통령은 “주변관리 잘못한 책임”이란 말로 그에 대한 원망을 표출해왔다. 최근 청와대 수석들에겐 “나와 있을 때 눈도 못 맞추는 사람이었는데…”라며 속았다고 강한 배신감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 다음 순위는 김기춘, 우병우다. 정말 박 대통령 말대로 최순실 일당에게 속은 게 맞다면 속지 않도록 깨우치고, 올바르게 보좌했어 할 책임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김기춘은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서도 최순실을 모른다고 잡아뗐지만 그 촉 좋은 사람이 정말 최씨의 국정농단을 몰랐을 리 없다.

박 대통령이 또 원망해야 할 사람들은 새누리당 친박계들이다. 수족으로, 호위무사로 충성해왔다고 고마워했을지 모르나 박 대통령을 오늘의 참담한 상황으로 이끈 사람들이야말로 그들이다. 오랫동안 박 대통령의 곁을 지켜오면서 최순실과의 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텐데도 바로 잡지 못하고 국정농단을 방치했다. 바로 잡기는커녕 비호하고 방어막을 치고 나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문고리 3인방의 철저한 마크 탓을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뒤에도 뜬금 없는 당 대표의 단식농성,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는 어설픈 발언 등으로 끊임 없이 촛불집회에 분노의 에너지를 보탰던 친박계다. 그들의 역설적 뒷받침이 없었더라면 234표라는 압도적 탄핵 가결은 불가능했을 터이다. 지난 4ㆍ13총선 때는 친박 중심의 막장 공천으로 전통적 보수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했고 결국 총선 참패를 불렀다. 박 대통령 탄핵 가결은 그런 친박계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숙하고 물러나야 마땅한데도 되레 비박계들을 배신자로 낙인 찍고 당을 떠나라고 큰소리니 어이가 없다. 비박계와 결별하고 분당도 불사하겠다는데, 50여명 친박계 의원들이 뭉쳤다는 모임 이름이 ‘혁신과 통합 연합’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지난 총선에서 그렇게 친박 인사들을 내리꽂는 공천을 하려고 매달렸을 테지만 지금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두 보수정권의 연속된 실패로 보수진영이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 야권과 진보진영의 세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보수의 완전 몰락은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마나 보수가 회생하려면 지금의 실패에 책임 있는 친박계가 빠져줘야 가능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친박계가 죽어야 보수가 살아날 가망이 있다. 지금처럼 친박계가 현실 상황 모르고 민심을 계속 거스르는 행태를 보이면 보수 전체에 대한 불신과 환멸만 깊어질 뿐이다.

그들이 버티고 있으면 당장 민생과 경제, 안보의 시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여ㆍ야ㆍ정 협의체도 제대로 가동될 리 없다. 박 대통령의 눈에서만이 아니라 삶이 망가진 국민들의 눈에 흐르고 있는 피눈물을 조금이라도 멈추게 하려면 친박계가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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