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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 사진의 주인공은 대통령일까 시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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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 사진의 주인공은 대통령일까 시민일까

입력
2016.12.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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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취임식 무대에서 손을 흔드는 박근혜 대통령. 주인공은 대통령일까, 배경으로 처리된 국민들일까. 청와대 홈페이지
2013년 취임식 무대에서 손을 흔드는 박근혜 대통령. 주인공은 대통령일까, 배경으로 처리된 국민들일까. 청와대 홈페이지

2016년 12월 10일 기준 청와대 홈페이지의 포토 갤러리에는 모두 2,407개의 게시물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재임 기간 평균 하루에 한두 묶음의 사진이 게시된 셈이다. 실제로 탄핵 표결이 있었던 9일 오후에도 국무총리 및 부처 장관 간담회를 주재하는 박 대통령의 사진을 모은 게시물이 올라왔다.

사진은 말하지 않고 그저 보여줄 뿐이다. 예를 들어 탄핵 표결이 완료되었고, 대통령의 직무가 한두 시간 후에 정지될 것이라는 무거운 사실을 사진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최근 두어 달 이 갤러리에 올라온 사진들만 봐서는 청와대 밖의 격앙된 민심과 연이어 터져 나오는 치명적인 뉴스의 흔적을 느끼기 어렵다. 사진 속의 대통령은 변함없이 정상회담을 하고 임명장을 수여한다. 시장을 방문하고 연설을 하고 박람회를 둘러본다. 단지 조금 덜 웃고, 더 진한 색의 옷을 입었을 뿐이다.

버튼을 몇 번 클릭하면 우리는 점점 더 오래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사진들의 일대기는 2013년 2월 25일에 시작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던 날이다. 태극기를 흔들며 열광하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박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에서 출발한다. 공기는 맑고 하늘은 푸르다. 취임식장에서 연설하고 카 퍼레이드를 하는 그는 마치 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처럼 보인다.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끊임없이 손을 흔드는 사진 속의 박 대통령은 관저에 초라하게 ‘유폐’될 46개월 후의 운명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역시 그가 취임사에서 강조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이렇게 참혹하고 희극적인 모습으로 도래하게 될 것까지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듯이.

맑고 푸르렀던 박근혜 취임식

취임식이 열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7만여 명의 시민들이 몰렸다. 대통령 취임식 사상 최대의 인파였다. 그러나 그들은 카메라의 프레임에서 전혀 주목되지 않는다. 사진 속의 시민들은 마치 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치고 깃발을 흔들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 같다. 취임식 이후 몇 년 동안의 사진들에서도 시민들은 그저 영웅 서사의 주인공인 박근혜 대통령의 배경 인물이자 단역일 뿐이다. 웃으며 환호하고 대통령의 손을 잡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자신들의 어린 것을 내밀어 그에게 안겨 준다.

2013년 취임식 뒤 카퍼레이드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 이날의 주인공은 정녕 대통령일까. 청와대 홈페이지
2013년 취임식 뒤 카퍼레이드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 이날의 주인공은 정녕 대통령일까. 청와대 홈페이지

최근의 촛불 정국은 이 사진에서 잊혀진 중요한 일을 상기시켰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그리고 심지어 시민들조차 잊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공화국의 주권자는 시민이라는 것, 그리고 통치자의 권력과 행정 제도의 정당성은 시민으로부터 위탁된 것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사실 주인은 무대 아래에서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는 시민들이라는 것, 자못 영웅이나 주인공처럼 구는 무대 위의 대통령과 관료, 정치가들이 초라한 짚강아지처럼 끌어내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우리는 확인했다.

물론 이것이 단지 어떤 상상이나 속임수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었다. 대의민주제는 그저 몇 명의 비슷한 정치 엘리트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하는 과두정의 민낯을 은폐하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사실로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만약 수백만 명의 시민이 매주 거리에 나가 목소리를 높여도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었다면, 우리는 스스로 민주주의라고 부르던 체제를 과연 어떻게 변호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인천 정서진중앙시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은 중심에, 시민은 배경으로 처리된다. 대통령 사진은 모두 이런 공식에 따른다. 청와대 홈페이지
지난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인천 정서진중앙시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은 중심에, 시민은 배경으로 처리된다. 대통령 사진은 모두 이런 공식에 따른다. 청와대 홈페이지

사진 속 배경이 민주공화국 주인이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결집하여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주권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깨달음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사진에서 단지 배경이나 인파로 존재하던 시민들은 촛불이 되어 무서운 존재감을 과시했다. 광화문과 시청에서 청와대를 향해 유장하게 흐르던 촛불의 물결을 찍은 사진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잊히지 않을 우리 시대의 이미지가 될 것이다.

그 촛불집회 사진들의 특징이 있다면,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는 개인이나 집단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집중적인 시선을 받으며 인파의 구심점이 되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영웅이나 인간미를 지닌 정치 지도자가 이 사진 속에는 없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피델 카스트로처럼 대중을 끌어 모으는 탁월한 연설가도 없다. 촛불집회에 나온 정치인들은 지극히 제한된 발언 시간을 받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투쟁의 논리를 만들고 후위의 민중을 이끄는 전위 조직도 보이지 않는다. 열사의 영정도, 거대한 걸개그림도 없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신 이 사진 속에 존재하는 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반짝이며 움직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촛불의 집합이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대규모 토론을 벌이며 정치 세력과 두뇌 싸움을 벌이는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1987년 6월 항쟁과 2004년의 탄핵 정국,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차례로 통과하며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축적한 시민들은 예전과는 달랐다.

‘비폭력 프레임에 갇히지 말되, 집회의 정당성이 공격받지 않고 참여자의 외연을 확장하려면 평화 시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수준 높은 전략이 SNS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었다.

대중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데 도통한 나이든 정객들의 노회한 수싸움은 매번 사람들에 의해 그 속내를 읽혀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사진과 담화를 통해 몇 차례 정교한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시민들의 네트워크는 그 행간에 숨은 의도를 간단히 읽어내고 이를 무력화시켰다. 저잣거리의 민심을 자극하고 이를 장악하는 데 언제나 압도적인 역량을 보였던 박 대통령은 힘 한번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굴복 당했다. 자신의 사진에서 배경처럼 서 있던 바로 그 시민들에게 말이다.

일렁이는 익명의 촛불이 민주주의

이것은 통치자들에게 두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진태는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고 했다가 대대적인 반격을 당했다. 그의 말은 ‘논어’의 오래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즉 군자의 덕(통치 행위)을 바람에, 소인의 덕을 풀에 비유하며 바람이 불면 풀은 눕는다는 주장 말이다. 시인 김수영은 풀이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는다’고 쓰면서 2,000년 전의 경전에 맞섰다. 그런데 지금의 풀들은 한발 더 나아가 네트워크를 만들어 스스로 바람을 소환하여 이를 움직인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무지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음모론이 탄생한다. 소설가 이문열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를 북한의 ‘아리랑 축전’과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에 비유했다.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애써 다른 이의 입을 빌리는 그의 초라한 필력은 안쓰럽다. 이문열은 네트워크를 이룬 개인들이 영웅도 지휘부도 조직 체계도 없이 움직여 권력과 맞서는 세계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세계관을 교정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그는 고장난 축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며 외로이 늙어갈 것이다.

탄핵 표결 전날인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앞에서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탄핵 표결 전날인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앞에서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그러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민주주의의 도래’라든가 ‘집단지성의 진보’라든가 하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은 우리를 자주 배신한다. 역사의 흐름을 시민의 힘으로 되돌렸을 때 매번 세상이 더 나아졌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도 왕정 복고가 오지 않았던가. 세상은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며 나아간다.

사진의 역사와 이론을 공부하는 나는 촛불 시민들의 승리만큼이나 영웅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고도 이 정도 규모의 싸움을 이끌어나갔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다시 영웅을 자처하는 이들이 도래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마구 뿌려댈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받아들인다. 영웅은 욕망의 한 형태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이미지 역시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했던 욕망과 희망이 투사되어 빚어진 어떤 실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우리는 그의 이미지에서 풀려났다. 어떤 개인을 구심점이나 상징으로 삼지 않고도 새로운 시대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즉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선을 넘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실로 간결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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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 사진비평가ㆍVOSTOK매거진 편집동인

공동기획: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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