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가결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인 10일 오후 ‘촛불의 성지’ 서울 광화문광장은 희망으로 달아 올랐다. 시민들은 모처럼 부도덕한 정권을 심판한 정치권을 한 목소리로 칭찬하면서도 탄핵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기 위해 다시 광장에 섰다.
이날 오후 청계광장에서는 1987년 민주화운동 세대와 2016년 청년 세대가 함께 토론하는 이야기 마당이 펼쳐졌다. 87체제 대표로 참석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민주화 항쟁 당시 6ㆍ29 선언을 통해 시민사회가 승리했다고 섣불리 단정하는 우를 범했다”며 “박 대통령 탄핵 가결 역시 끝이 아니라 미래를 제대로 고민하고 부패에 연루된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청산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핵 가결 이후에도 광장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낮 12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광화문 탄핵 이후 광장은 무엇을 할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회와 사법기관의 결정을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광장의 시간을 지속시켜야 한다”며 “새로운 사회체제로서 시작하기 위해서는 재벌지배구조 해체, 새로운 노동권 복원, 학벌과 인맥으로 이뤄진 한국사회 청산 등 새로운 논의가 광장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객석에 앉아 있던 40대 남성도 “탄핵안 가결 후 눈물을 흘린 세월호 참사 유가족, 농민들 모두 박근혜정권에서 탄압 받은 분들”이라며 “아직 세월호 진상규명과 수많은 정리해고 노동자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탄핵은 목표가 아니라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 중 일부”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을 농락한 범법자들에 대한 처벌 요구는 더욱 커졌다. 이날 오후 3시 서울광장에는 서울대 민주동우회, 이화여대 민주동우회 등 깃발 수십개와 함께 5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청와대로의 1차 행진에 앞서 ‘박근혜 즉각퇴진!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주권 선언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내각총사퇴’ ‘박근혜구속수사’가 앞뒤로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같은 시각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에서는 ‘416 세대’ 대학생들이 모여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안드레 동국대 총학생회장은 “탄핵안 가결은 정치적 심판일 뿐 국민들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권한대행을 맡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앞으로 국민들을 기만하지는 않을지 더욱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전인숙씨는 “박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히기 위해 제 일처럼 나서주는 시민들이 있어 고맙다”며 “권력이 방해한다 해도 국민의 힘으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청와대 행진과 본 행사에 앞서 열린 다양한 사전집회를 통해 참석자들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믿음을 재확인했다. 국민주권 선언대회에서는 “국민주권시대는 특출한 몇 사람이 앞장서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주권자 국민이 앞장서고, 정치권도 시민사회운동도 그 뒤를 쫓아가야 한다”는 선언이 발표됐다. 이후 가수 DJ DOC가 무대에 올라 탄핵안 가결 후 첫 집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손가락에 장을 지지는’ 패러디 등 풍자 사진이 대형 스크린에 뜨자 시민들은 환호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오후 4시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을 떠나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의 분노를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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