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결 직후 국무위원 간담회 주재
“헌재 심판ㆍ특검 수사 차분히 대응”
마지막 메시지 남기고 ‘정치 동면’
각료에 국정 부탁…미련 안 놓아
9일 끝내 탄핵 당한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은 담담했다. 18년 간의 정치 인생이 강제 종료될 위기에 했는데도 냉정을 지키려 애썼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50분만인 오후 5시,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시한(내년 6월6월)까지 정치적 동면에 들어가기 앞서 마지막 메시지를 내기 위해서였다.
박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헌재의 탄핵심판과 특별검사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장관들께서는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국정 공백이 최소화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에는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못박은 것이다.
국회 탄핵 표결에서 찬성표가 234표나 나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는데도, 박 대통령의
차분한 목소리는 5분40초 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가 모두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저의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또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지금의 혼란이 잘 마무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에 대한 미련도 끝내 버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최근의 일들로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려고 정부가 추진해 온 국정과제들까지 진정성을 의심 받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면서 “각 부처 장관께서는 대한민국 미래 발전을 위한 국정과제만큼은 마지막까지 중심을 잡고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고 기자들이 철수한 뒤 박 대통령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모든 국무위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주고 받았고, 그 과정에서 잠시 눈물을 글썽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로 돌아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때 가족, 참모들과 산에 오르는 등 청와대 주변을 다니며 헌재의 결정을 기다렸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몸을 꽁꽁 숨기고 헌재 심리와 특검 수사 준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의 탄핵 표결 장면도 청와대 관저에서 혼자 TV로 지켜봤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고 촛불민심이 끓어 오르고 있어 최대한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며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에게 철저히 속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법적으로 무고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7시3분 국회에서 보낸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를 전달 받은 순간, 박 대통령의 직무와 권한이 모두 정지됐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신분’이라는 껍데기만 남은 상태가 됐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는 한, 경호와 의전 등 대통령 예우는 그대로 받게 된다. 월급도 탄핵 이전과 같은 액수로 받는다.
박 대통령은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난파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 대표를 맡으면서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그로부터 12년9개월이 지난 지금, 박 대통령이 또 다시’ 탄핵 대통령’이 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 사(史)의 비극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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