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사 국정교과서를 지키기 위한 반격에 나섰다. 토론회 홍보 등 여론몰이를 하는가 하면, 법적 대응에 이어 색깔론 공세까지 펴고 있다. 현행 검정교과서들이 못마땅한 보수층의 결집 분위기에 편승하는 모양새다.
9일 교육부에 따르면,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은 12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948년 8월 15일, 한국현대사 상의 의미와 시사점’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 1948년 건국론에 비판적, 중립적, 우호적 학자들로 발표자를 꾸려 일단 구색은 갖췄다.
그러나 역사학계 정설을 뒤집고 국정교과서에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으로 건국론을 수용한 정부의 의도가 실린 학술회의라는 게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주장이다. 우선 현대사 연구자 대부분이 어용(御用)토론회 보이콧을 천명한 상황에서, 건국론 반대론자로 회의에 참석하는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의 반대 논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선 “신생국도, 통일정부도 아니어서 건국이 아니라는 핵심 대신, 임시정부 부정이 민족정통성 승계의 근거를 흔들어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한 교수의 논리는 오히려 이용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학자들은 해당 학술회의가 소수 학설에 불과한 건국론을 정설과 대등한 위치로 포장하는 것 자체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수걸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1948년 건국론 고집은 북한을 배제해야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고 학생들이 믿게 하려는 정치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의 역공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를 강화하고 교육부 관료, 국사편찬위원장 등 정부 인사들이 보수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정화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이달 초엔 일선 학교의 국정교과서 채택 거부를 유도한 시도 교육감들을 상대로 교육부가 제재를 시사하고, 이들이 개발 중인 보조교재가 북한을 찬양했다면서 색깔론을 펴기도 했다.
보수 진영의 엄호도 정부에 힘을 싣고 있다. 전국 1,600여개 사립 중ㆍ고교 교장들의 모임인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는 7일 성명을 내고 “역사 국정교과서가 과거 검정교과서에서 나타났던 좌편향적 시각의 기술들을 걷어내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임시정부가 나라를 잉태한 것이라면, 대한민국 수립은 출산을 한 것’이라는 조선일보 사설 내용은 건국론을 지지하는 정부 토론회 발표자 강규형 명지대 교수의 표현과 같다.
진보 진영은 그간 무시 전략에서 적극적인 대응으로 전략을 바꾸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 등이 정부 학술회의 당일(12일) 국회에서 맞불 토론회를 열기로 했고, 현대사 연구자들도 정부 주장의 학문적 오류를 폭로하는 긴급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대통령 탄핵 가결을 안보 위기로 몰고 가 반전을 꾀하며 결집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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