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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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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다

입력
2016.12.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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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개최된 제22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2)에 참석한 대표단들이 지구 모양의 거대한 고무공을 높이 들어 굴리고 있다. 마라케시=AFP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개최된 제22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2)에 참석한 대표단들이 지구 모양의 거대한 고무공을 높이 들어 굴리고 있다. 마라케시=AFP 연합뉴스

“지구 온난화라는 개념은 중국인들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낸 것이다.”

2012년 11월 6일 트위터에 이와 같은 글을 올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도널드 트럼프는 약 4년 후인 2016년 11월 8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날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세계 197개국이 합의한 파리협정 발효라는 희망적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나흘 뒤기도 했다. 트럼프의 승리 이후 세계의 이목은 온통 트럼프가 대선 기간 공약한 ‘파리협정 탈퇴’를 현실화할 것인지에 쏠렸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술 더 떠 “인간의 활동과 기후변화 간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다고 본다”는 모호한 발언으로 혼돈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깨닫기만 하면 만사형통일까. 답은 ‘아니오’다. 급속히 악화하는 기후변화의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파리협정은 발효 전후로 이미 각국 정부의 소극성 등 현실적 한계로 인해 우려에 휩싸여왔다. 매달 지구 평균 기온이 월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파리협정을 완수한다 해도 기후변화의 재앙을 막기엔 너무 늦었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마지막 희망 ‘파리협정’, 실효성은?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을 골자로 한 파리협정은 지난해 12월 12일 전세계 지도자와 시민사회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채택됐다. 세계 197개 당사국 대표들은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2주간의 격론 끝에 2020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신기후체제에 합의했으며,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 55% 이상을 차지하는 55개 국가 및 단위가 공식 비준함에 따라 지난달 4일 공식 발효됐다. 파리협정에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섭씨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 1.5도 이하로 제한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INDC) 이행 독려 ▦2020년부터 개발도상국에 최소 1,000억달러(약118조원)의 기후변화 대처 지원금 제공 등의 내용이 담겼다.

협정의 방점은 각국 정부가 목표 달성을 위해 제출한 INDC의 이행 여부에 찍혀 있다. 5일 현재 총 115개국이 파리협정에 비준했으나 INDC가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은 만큼 구체적인 이행 방식에 대한 진행이 더뎌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비영리 연구기관 클라이메이트액션트래커(CAT)에 따르면 현재 파리협정 참여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으로는 세기말 2도 상승선을 훌쩍 넘긴 평균기온 3.3~3.9도 상승이 불가피하다. 유엔은 더 나아가 참여국들이 적정 정책을 마련해 INDC를 모두 달성한다 해도 2100년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7~3.5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해 파리협정에 대한 비관론을 키우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자 9월 동시에 비준을 선언한 미국과 중국의 행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은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중국은 2030년 이후 배출량을 줄이는 동시에 무탄소 전력량 비율 20% 달성을 INDC로 공표했다. 하지만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 오바마 정부는 온실가스 최대 주범으로 지목되는 화석연료 보조금을 폐지하기 위해 2010년부터 11개 법안을 발의했음에도 단 하나도 의회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공식 수치상 배출량 통제가 이뤄지고 있으나 정부 통계 자체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1년 7월 미국 연안경비대(USCG) 대원이 북극 빙하 해역에서 조사 활동을 진행 중인 모습. 나사ㆍ로이터 연합뉴스
2011년 7월 미국 연안경비대(USCG) 대원이 북극 빙하 해역에서 조사 활동을 진행 중인 모습. 나사ㆍ로이터 연합뉴스

‘기후 절벽’에 선 지구, 이미 늦었나

협정이 무의미한 구호로 끝나지 않기 위해 실효성 있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 마련이 촉구되는 가운데 기후변화는 점차 가속화하며 적신호를 켜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후변화 시계를 되돌리기에 이미 늦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도 상승선을 넘어섰으며,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지구 이산화탄소 연평균 농도 또한 400ppm(피피엠ㆍparts per million)으로 관측됐다. 400ppm은 평균기온 2도 상승의 심리적 저지선으로 상정된 수치다. 그럼에도 화석연료 발전은 여전히 전체 에너지의 86%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물론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적인 목소리도 남아있다. 세계 화석연료 보조금 규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ㆍ중이 9월 말 서로의 보조금을 교차점검하는 등 이례적인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 전반의 비용과 직결되는 민감 사안에 대해 투명성이라는 1차 과제를 일정 부분 해결한 양국에 극찬이 쏟아지자 중국은 주요 20개국(G20)에도 보조금 교차점검 동참을 촉구했다.

정부보다 발빠른 민간의 기후변화 대응

산적한 과제에 짓눌린 정부에 비해 민간 차원에서는 발 빠르게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애플의 자회사 애플에너지는 태양광업체 퍼스트솔라와 캘리포니아에 태양광 발전소 건립을 추진한 데 이어 지난 8월 공식적으로 전력 거래 허가를 받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등에 연 7만6,000가구의 사용량에 맞먹는 전기를 사용 중인 애플이 재생에너지 개발을 통해 전력 자체 충당에 나선 것이다. 애플뿐 아니라 구글ㆍ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일제히 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하면서 미국 기업들의 청정에너지 발전량은 2013년 이후 매년 2배 이상 급증하고 있다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정부에도 고무적이다. 재생에너지 생산이나 공장 생산방식 변화 자체가 거대 자본의 이동을 필요로 하는 만큼 정부의 최우선 과제 역시 기업에 신뢰를 주는 정책 마련이기 때문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고문을 지낸 환경보호기금(EDF) 나타니엘 코헨은 이에 “파리협정의 성공은 세계 각국이 자본을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움직일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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