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수 주중대사는 최근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 잡고 국민들에게 직접 한 건 아니지만, 그가 베이징(北京)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얘기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달됐으니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바로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서다.
김 대사는 지난달 28일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의 대처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던 그는 2년 7개월여 만에 입을 열면서 반복해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청했다. 김 대사와의 만남은 물론이고 현안과 관련한 속 얘기를 듣는 걸 하늘의 별따기로 여겨온 특파원들은 어정쩡하게 그의 요청을 수용하는 듯했다가 결국 거부했다. 일부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김 대사로부터 진실의 일단을 끄집어내려 했던 것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김 대사의 설명과 해명은 예상대로 한참 부족했고 허점투성이였다. 그러나 두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했다. 자신이 박 대통령과 직접 6,7차례 전화통화를 했는데 당시 박 대통령은 구체적인 지시나 질책을 할 정도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게 하나다. 각종 의혹에 대해 “청와대에 물어보라”거나 “내가 말하는 게 적절치 않다”며 청와대가 밝힌 ‘이것이 팩트입니다’를 절대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다른 하나다.
하지만 김 대사의 이날 발언에는 의도와 무관하게 거짓말이 꽤 섞여 있는 듯하다. 그는 오후 2시57분 박 대통령과 7번째 통화를 할 때 통계오류에 대해 강한 질책을 받았다고 했다. 적어도 그 통화 전까지는 전원구조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 대사는 점심시간에도 언론이 전원구조 오보를 내보내고 있었음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 때문인지 오전 11시20분 전후 청와대와 해경 간 통화에서 오보 사실을 확인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비켜갔다.
그러나 최근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올림머리를 하느라 금쪽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기사에선 오전 11시23분 김 대사가 유선으로 박 대통령에게 “315명이 갇혀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나온다. 김 대사가 잘 모르겠다고 한 부분인데, 이미 사실관계가 확인된 청와대ㆍ해경 간 통화와는 상황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본질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한 것 자체가 의도적인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대면보고가 전혀 없었고 그나마 유선보고 몇 차례에다 대부분 서면보고였는데 그게 가능했을 리 없다는 건 상식이다. 게다가 여기엔 정확한 보고가 전제인데 김 대사의 말을 100% 믿더라도 그는 상당 시간 동안 구조인원 숫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이는 박 대통령을 두둔하기 위해 무능을 감수한 것이거나 아니면 사실관계는 얼버무린 채 대통령을 잘 보좌하고 있었음을 강변한 것일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엉뚱하게도 구명조끼 운운하는 질문을 한 것에 대한 그의 대답은 참으로 가관이다. 박 대통령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김 대사는 ‘이노슨트 와이’(Innocent why) 차원이라고 말했다. 순수한 호기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긴박했던 참사 당일 첫 보고가 유선이 아닌 서면이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대답을 회피한 채 거수경례를 하며 자리를 뜨기도 했다. 참사 당시 청와대 핵심에 있었고 지금도 공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짓말이 막히니 장난끼로 넘어가려 했던 것 아닌가 싶다.
김 대사는 며칠 전 중국지역 공관장회의 직후 그간 함구했던 이유에 대해 “누가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답해야 한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하나가 세월호 참사 대응 문제이고 모든 국민이 7시간의 진실을 묻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대사관이 직면한 현안들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김 대사는 국민의 물음을 회피해선 안된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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