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16년 과학계의 가장 큰 뉴스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중력파 검출을 추천한다. 중력파란 시공간의 출렁임이다. 중력의 본질을 시공간의 곡률로 이해한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완성한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파가 존재한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미국의 중력파 검출 설비인 라이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연구진은 지난 2월 11일 발표를 통해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개의 블랙홀이 합쳐질 때 생긴 중력파의 신호를 2015년 9월 14일 감지했다고 밝혔다. 아인슈타인 이래 지난 100년 동안 일반상대성이론은 숱한 검증을 거쳤다. 중력파 검출은 그중에서 가장 확실하고도 결정적인 검증으로 꼽힐 만하다.
이 정도면 이제 그만할 법도 한데, 과학자들의 검증욕구는 만족을 모른다. 올 4월 25일, 조그만 우주선 하나가 유럽에서 우주로 발사되었다. MICROSCOPE라 불리는 이 작은 위성은 우주 공간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원리인 등가원리를 검증하는 실험을 수행할 예정이다.
등가원리란 간단히 말해 가벼운 물체와 무거운 물체가 동시에 떨어지는 것과 관련된 원리이다. 그 옛날 갈릴레오가 주장했던 바로 그 사실 말이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실험한 바로는 등가원리가 대략 10조분의 1의 정밀도까지 성립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MICROSCOPE는 이 정밀도를 대략 100배 정도 향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만약 1,000조분의 1의 정밀도에서 등가원리가 깨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일반상대성이론이 아닌 새로운 중력이론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발견자는 당연히 노벨상도 받을 것이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어떤 과학원리라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원리가 어느 정도까지 성립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될 만한 것들도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서 검증하려 든다. 집요하고도 혹독한 검증은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다.
‘혹독한 검증’이라는 말을 또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대통령 선거이다. 예를 들어 최근 대선 후보로 물망에 오르내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한국일보 이충재 논설위원은 “국내 정치판에서 혹독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터라 자질과 능력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고 논평했다(2016년 5월 29일자 [지평선]).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과 그 뒤를 이은 현직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지켜보자니, 지금까지 거의 모든 언론이 그토록 혹독하다고 했던 우리의 대선 후보 검증 시스템이 잠깐이나마 우습게 보였다.
검증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매우 심각하다. 왜냐하면 멀쩡하던 대통령이 갑자기 권력욕이나 사리사욕에 도취해 헌정을 중단시키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적어도 우리의 대선 후보 검증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의 유착관계는 4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가 있다. 후보 검증 시스템이 집요하고도 혹독하게 작동했더라면 아마 자연인 박근혜는 대통령은커녕 국회의원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 두 번이나 나서는 동안, 그리고 본선에서 선거 운동하는 동안, ‘혹독한 검증’의 주체였어야 할 지금의 새누리당과 언론은 대체 무얼 했을까. 정권 재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유력 후보의 허물은 덮기로 했던 걸까. 눈부신 ‘아우라’를 뒷받침하는 100개의 형광등 중 하나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됐든 이들의 직무유기는 자신들의 부귀영화로 연결되었다. 얼마 전까지도 주권자들 위에서 군림하며 이래라저래라 큰소리치고 다녔다. 합법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이 모든 공범도 모두 똑같이 탄핵하고 싶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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