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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자갈밭

입력
2016.12.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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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예창작학과 출신이라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대부분 작가지망생이었다. 졸업하고 시인이 되거나 소설가가 된 선배가 어쩌다 학교에 놀러오기라도 하면 우리는 오종종 모여 앉아 선배가 해주는 문단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흠모하던 작가가 실제로도 멋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말도 못하게 기뻤고 그렇게 괜찮은 글을 쓰는 작가가 알고 보면 주정뱅이에 잡범 수준이더란 이야기는 못내 한탄스러웠다. 우리가 선배에게 듣는 문단은 아득하고 먼 곳이었다지만 작가가 된 후 내가 본 문단은 또 동네 슈퍼 앞에 내놓은 평상 같은 곳이기도 했다. 오다가다 들러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고 맥주 한 잔 얻어 마시며 노가리를 뜯는 그런 곳 말이다.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여성작가들이 느끼는 부끄러움과 참담함이 내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 작가의 성폭력 피해자 연대 SNS 계정 운영자가 그동안 계속해 온 고발과 싸움을 이제 그만두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가해 지목자는 여전히 억울하다 호소하고 피해자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작가회의에서는 공지영 소설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문단 내 성폭력 징계위원회를 꾸렸다. 조사 후 해당 작가의 제명이 이루어지겠으나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회의적 시선도 만만찮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라는 말로 위무하기에는 뒤에 선 피해자들의 고통이 극심하다. 언제나 이런 일은 ‘불합리한 시스템의 개선’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지만 그 바닥에 자갈처럼 쌓인 피해자의 상처는 그대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자갈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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