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 수성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며칠 전에, 제가 컨설팅하는 한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메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루 전에 물에 담가 놓았던 콩을 꼭두새벽부터 쑤어서 내놓았더니,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무척 신기해하였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메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을 식혀서 절구에 담아 ‘콩당 콩당’ 찧어서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러서는 자기만의 독특한 메주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 된장을 만들며 삶을 배워가는 아이들
3세 아이들은 만든다기보다는 콩을 맛있게 주워 먹기 바빴고, 선생님이 찧어준 콩반죽을 손바닥으로 치거나 열 손가락으로 조몰락거리면서 즐겁게 가지고 노는데 시간을 거의 보내었습니다. 4세 아이들도 여전히 콩을 열심히 먹더군요. 동글동글 뭉쳐서 야구공만한 메주덩이를 만들고는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들도 함께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5세 아이들은 다소 진지하였습니다. 메주를 왜 만드는지, 메주로 어떤 음식을 해먹는지, 메주는 얼마큼 훌륭한 음식재료인지, 우리나라 전통음식으로서 매우 자랑스러운 메주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만들면서 서로의 메주 모양을 비교하기도 하고 격려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6세 아이들은 더욱 진지하였습니다. 철 든 처녀총각들이 메주를 만드는 듯 했습니다. 메주에 생기는 곰팡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메주에 좋은 곰팡이가 생기도록 볏짚을 이용하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여럿이서 힘을 모아 자기들 얼굴보다 더 큰 메주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 메주들은 며칠 지나는 사이에 조금씩 단단해질 것이고, 볏짚에 엮어 매달아 놓았다가 곰팡이가 피어나는 과정을 거쳐, 몇 달 후에는 소금과 물을 만나서는 또다시 발효되었다가 드디어 된장과 간장이 되어서 우리의 음식재료로 등장하게 되는 거지요.
- 메주가 던지는 메시지, 혹은 시간의 철학
저로서는 아이들이 메주를 만든다는 그 체험보다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콩’ 한 알이 만들어지기까지도 대단한 과거가 있다고 봅니다. 콩알 하나가 흙과 바람과 햇빛과 물을 만나면서 여러 낮과 밤을 거쳐 뿌리가 내리고 쭉쭉 성장하여 꽃피고 열매 맺고 여문 뒤, 부지런한 농부의 손을 거쳐 우리의 손에까지 왔습니다.
아이들은 이 ‘콩’이 한 가지의 음식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들어져 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무수한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햇빛과 바람 덕분에 메주가 꾸덩 꾸덩 말라가는 모습을 볼 것이고, 비나 눈이 오면 비에 메주가 물에 젖지 않도록 걱정해 줄 것이고, 메주한테 적절한 온도를 제공해주어야만 곰팡이가 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온도를 계속 체크할 것이고, 곰팡이가 피어나면 돋보기를 갖다 대면서 대단한 과학자가 된 듯이 관찰할 것이고, 어느 날에 장독을 복판에 두고서 저울에 메주와 소금과 물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장을 담을 것입니다. 한참 뒤 잊었을 성싶은 어느 날에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면서 드디어 음식재료의 탄생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한 아이들이 어떤 아이로 자라날까요?
- 라면과 된장, 우리는 어떤 아이로 키워야 할까요?
라면을 된장과 한번 비교해볼까요? 인스턴트식품과 발효식품을 비교해보는 겁니다. 끓는 물에 퐁당 넣어서 3분만 지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자주 먹는 아이와 오랜 시간을 공들여가면서 만든 음식, 경이로운 대자연의 생명 요소들이 듬뿍 들어가 있고, 인정 많은 손맛과 따뜻한 정성이 가득 담겨서 시간과 공간의 힘이 함축된 된장을 자주 먹는 아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사람은 먹는 대로 된다고 하더군요. 무엇을 먹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더욱이, 무엇을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체험하고 두고두고 보면서 궁리하느냐는 어린이집의 선생님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어머니들께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콩의 과거와 미래를 짚어보면서 된장이 되는 그날까지 갖은 생각과 행동을 이어가는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꾸려갈 때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자연의 순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경험을 숙성시키며 열과 성을 다하여 도전해갈 것입니다.
생각이 깊은 아이, 멀리 내다보는 아이, 꿈을 키우는 아이, 정교하면서도 복잡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아이, 다시 말해 내공이 깊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기나긴 과거와 재창조적인 미래가 담긴 활동을 자주 시켜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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