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구매대행ㆍ케이크 만들기 등
자투리 시간에 쏠쏠한 수입 거둬
사교모임에 3년간 5000명 유치
교육사업 확장으로 자아실현도
불안한 현실, 설렌 준비로 이겨
대부분의 기업 사규로 투잡 제한
시간ㆍ체력 떨어져 접는 경우 잦아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현주(30ㆍ가명)씨는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유명 해외의류구매대행 블로그의 사장님으로 변신한다. 어릴 적부터 물건 보는 능력이 남달라 의류 사업을 함께 하자는 제안도 받아온 김씨는 3년 전부터 여름이면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겨울에는 머플러와 니트 같은 패션 방한 용품을 블로그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김씨는 “사진을 찍어 올리고 배송 등 블로그 관리에 일주일에 6시간 가량을 투입하면서 월 50만~100만원 정도의 수익을 내고 있다”며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재미있게 돈을 벌 수 있어 앞으로도 본업과 병행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버리는 아쉬운 월급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투잡’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취미가 또 하나의 직업으로 발전하든, 치밀한 준비를 거쳐 회사 몰래 본격적인 사업을 하는 신생혁신기업(스타트업)이든 투잡의 목적 대부분은 팍팍한 경제 사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는 작은 희망이다. 지난 6월 취업포탈 사람인이 직장인 1,0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본업 외 투잡을 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3.8%가 ‘그렇다’고 답했다. 투잡을 생각하는 이유로는 ‘월급으로는 생활이 힘들어서’라는 답변(55.6%ㆍ복수 응답)이 1위였고, ‘여유 있게 돈을 쓰고 싶어서’(33.8%), ‘노후 대비 및 여유자금 확보차원에서’(28.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대부분이 현재와 미래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투잡을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직장을 다니면서 소비의 즐거움과 밥벌이의 어려움을 동시에 알아버린 20,30대는 하나의 직업만으로는 내 집 마련과 결혼 등 미래의 과제를 풀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5년 차 대기업 직원 정원호(31ㆍ가명)씨도 최근 지인들과 함께 사무공간 임대 서비스 투자를 고심 중이다. 정씨의 연봉은 6,000만원 가량으로 또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최상위권에 속하지만 자동차 운영비와 자취 생활비 등 현재의 지출과 1,2년 뒤 결혼자금을 고려하면 지금의 수입으로는 빠듯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정씨는 “지인들과 함께 투자해 지분을 나누고 전문 매니저를 두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며 “돈이 당장 급하게 필요한 건 아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월 50만원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투잡은 쏠쏠한 수입원 역할을 한다. 국내 유명 문구용품 회사에 다니는 신윤정(26ㆍ가명)씨는 떡 케이크를 만드는 ‘손재주’로 용돈을 벌고 있다. 직장생활에 지루함을 느끼던 신씨는 떡을 기반으로 꽃 모양의 앙금을 얹어 디자인하는 케이크 제조법을 원데이 클래스(하루 안에 특정 기술을 간략히 배우는 수업)를 통해 처음 접했다. 떡 케이크 만들기에 빠진 신씨는 정식으로 2개월을 더 배웠다. 이후 그의 케이크를 맛 본 지인들이 생일 등 특별한 행사 때마다 5만~8만원을 주고 신씨에게 떡 케이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신씨는 “제작에 5시간 가량 걸려 손이 많이 가지만 월 평균 50만~60만원 벌고 있다”며 “결혼 뒤 아이를 키워 직장을 쉴 때에도 집에서 케이크를 만들며 돈을 벌 수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투잡을 하는 이들 중에는 돈보다 자아 실현에 방점을 두는 경우도 있다. 국내 한 유명 무역회사에 다니는 임석호(31ㆍ가명)씨는 투잡을 통해 사업가로서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대학교 때부터 창업에 도전했던 임씨는 대기업 입사 후 2013년 지인 3명과 함께 의기투합해 한 사교 모임인 ‘슬링’을 만들었다. 슬링은 지인을 통해 초청받은 이들 200여명이 회당 7만원 가량을 내고 한 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와 간단한 술자리를 갖고 교류하는 시스템으로 지금은 연간 7회 정기 모임에 3년간 누적 인원만 5,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장했다. 이 모임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하거나 힘을 합쳐 창업을 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임씨는 “지난해에는 이곳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강남에 슬링이라는 이름의 맥주집을 열었고, 내년에는 교육 관련 사업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며 “수입으로 따지면 본업의 3분의 1도 안되지만 본업보다 더 흥미를 느끼고 있어 회사를 그만둘 지도 숙고 중”이라고 말했다.
투잡은 평소 할 수 없던 일에 대한 도전이 되기도 한다. 5년차 직장인 이선영(29ㆍ가명)씨는 지인들과 함께 주말에만 서울 이태원의 한 맥주집을 빌려 운영해보고자 준비에 한창이다. 이씨는 “부모님은 안정적 직장을 다니기를 원하지만 한번쯤 직접 가게를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에 시험 삼아 3개월 정도 맥주집을 운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두 가지 일을 모두 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투잡하는 이들 대부분 퇴근 후나 주말 등 황금 같은 휴식 시간에 또 다시 에너지를 쏟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진아(29ㆍ가명)씨는 지난해 봄과 가을 금요일 퇴근 후 밤새 과일잼 30병을 만들어 주말에 서울, 인천 일대의 수공예품 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수익성이 낮아 결국 그만뒀다. 이씨는 “하루 평균 9만원 가량 벌었지만 자릿세나 재료비 등을 빼면 손에 쥐는 게 많지 않았다”며 “회사 몰래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는 목표로 시작했지만 본업과 병행하기에는 시간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 결국 접어야 했다”고 말했다.
비밀스럽게 진행한다 해도 본업 마저 잃을 위험도 없잖다. 투잡은 법률적으로 위법 사항은 아니지만 대부분 기업들이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등 사규로 투잡을 제한하고 있다. 근로시간 중에 투잡을 하거나 퇴근 후 투잡으로 인해 근무에 태만해질 경우(근로제공의무 위반), 회사의 재산과 정보 등을 투잡에 활용하는 경우(충실의무 또는 비밀유지의무 위반)가 이에 해당한다. 박홍인 아이앤컴퍼니 노무사는 “사규상 금지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회사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은 투잡은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돈이 시급해 어쩔 수 없이 한 경우 등 상황에 따라 회사의 징계 수위가 달라질 순 있다”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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