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살입니까… 50이 안됐네요” 본질 떨어진 질문 눈살
김성태 “고령 총수 먼저 보내자” 정몽구 저녁 정회시간에 병원행
총수 입장부터 전쟁터 방불… “수행원이 시민 폭행” 소란도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는 재벌 총수가 9명이나 출석해 여러 진풍경을 연출했다. 오랜만의 ‘빅 이벤트’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송곳 질의’는 부족했다는 평이 많았다.
총수들이 고령이다 보니 11시간에 걸친 청문회 참석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정몽구(78)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오후 6시50분쯤 청문회가 정회하자 준비된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해 진료를 받은 뒤 돌아오지 않았다. 또 저녁 8시30분 재개된 회의에선 김성태 특위 위원장이 고령인 총수들을 먼저 보내자고 제안했고, 구본무(71) LG그룹 회장, 손경식(77) CJ그룹 회장, 김승연(64) 한화그룹 회장 순으로 청문회장을 떠났다.
이날 총수들의 답변태도가 불성실했는데도 의원들은 제대로 된 질의를 하지 못했고, 논리적으로 파고들기보다는 호통으로 일관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이 장충기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사장으로부터 삼성이 최순실씨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했다는 것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하자, “몇 살입니까. 아직 50이 안 됐네요. 평소에도 남이 질문하면 동문서답하는 게 버릇이에요?”라고 질타했다. 안 의원은 이 부회장의 답변 태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수준이다. 그러다가 삼성 직원들에게 탄핵당한다”고도 했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도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삼성 면접에서도 낙방할 것 같다”고 핀잔을 줬다.
본질과 무관한 질의도 여전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에게 “민주당에 입당한 적이 없냐”는 질문을 반복했다. 주 전 대표는 “선거운동을 한 적은 있지만 당적을 가진 적은 없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보충 질의 시간에 주 전 대표의 임기 문제를 재차 지적하고, 주 전 대표가 반발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부회장은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의 지원과 관련해 “최근에 보고를 받았는데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은 “여보세요” 라고 호통을 쳤을 뿐 어떤 사정인지 추가로 파고들지 못했다.
이날 국회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취재진 수백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 부회장은 청문회 시작을 30여분 앞둔 9시25분쯤 총수들 중 가장 먼저 국회에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은 “청문회에 어떤 각오로 임하겠느냐” 등 질문을 쏟아냈지만 이 부회장은 입을 굳게 닫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총수들은 하나같이 “성실히 답변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국회 안으로 입장하는 이 부회장을 향해 한 노동자가 “삼성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팻말을 들고 기습 시위를 벌이다 제지 당하기도 했다.
뒤이어 정몽구 회장이 아들 정의선(46) 부회장과 도착했을 때는 더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취재진 뒤편에 모여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정몽구도 공범이다”라고 크게 외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이를 두고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현대차 측 수행 경호원이 항의하는 시민을 폭행했다”고 지적했다. 고령인 정 회장은 손 의원의 지적에 “그렇지 않다”고 했다가 바로 옆에 앉은 변호인의 귓엣말을 듣고 “그렇죠.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죠”라며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그는 회의가 정회되자 윤소하 정의당 의원에게 다가가 악수하며 “나도 나이께나 먹은 사람이야”라고 하고,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등에게 “수고했어요”라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청문회가 중단된 뒤 총수들이 청문회장을 빠져나갈 때도 소란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취재진을 밀치는 등 국회 경위들의 과도한 의전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편 이날 회의 도중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현재 장모 김장자씨의 집에 있다고 하니, 동행명령권을 발부하자”는 도종환 민주당 의원의 제안에 김 위원장이 “우 전 수석이 출석요구서를 사실상 거부하는 행태가 보고되고 있으니 수석전문위원이 입법조사관, 경위를 대동하고 현장에 가서 거소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날 우 전 수석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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